보림사석탑지는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대적광전(혹은 비로전) 앞에 남북으로 세워진 두 석탑의 안에 들어 있던 납석(蠟石)제 탑지이다. 탑지는 1933년 삼층 석탑을 보수할 때 사리구와 함께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해서로 기록된 탑지의 서풍(書風)에 대해서는 초당의 구양순풍 혹은 남북조풍 등 여러 견해가 있다.
북탑지에 따르면, 탑은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의 왕생을 기원하여 870년(경문왕 10)에 세웠다. 이 사업은 서원부(西原部; 청주)의 장관 김수종(金遂宗)이 왕명을 받아 백사(伯士) 진뉴(珎鈕)와 함께 추진하였다. 그런데 김수종의 경우 958년 보림사에 철조 비로자나불조상기에 무주 장사현(전북 고창) 부관으로 나와 있다. 이는 그가 보림사의 불사활동에 깊숙이 관여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남탑지에는 891년(진성여왕 5)에 사리 7매를 넣었다고 기록하였는데, 20년 뒤 다시 보수를 한 것 같다.
또한 북탑지의 상면과 하면에는 조선시대의 수리사실이 기록되었다. 1478년(성종 9) 대회안거(大會安居)를 마친 대중 300여인이 탑이 기울어진 것을 보고 수리할 마음을 내었고, 화주(化主) 원식(元湜)과 대시주 박성미(朴成美)를 비롯 대중들의 보시를 받아 탑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쌍봉사(雙峰寺) · 무위사(無爲寺)의 대회안거와 무위사 주존불 조성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더욱 남탑지의 바닥과 측면에는 1684년(숙종 10) 5월 26일에도 다시 탑을 중수한 사실도 기록하여 놓았다.
9세기의 신라에서는 왕실과 귀족들이 주도하여 원당과 원탑의 건립이 성행한다. 보림사 석탑지도 그 한 예로써 철조 비로자나불상 및 보조선사 탑비와 함께 가지산문의 후원세력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 또 보림사에는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1962년 지정) 외에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963년 지정)을 비롯, 부도와 탑비(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