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46m.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보조선사(普照禪師) 지선(智詵)의 탑비로서, 그가 입적한 뒤 4년 만인 884년에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보물, 1963년 지정)과 함께 조성되었다. 이 비는 비신(碑身)과 귀부(龜趺)·이수(螭首)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이수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명(迦智山普照禪師碑銘)”이라는 비제(碑題)가 적혀 있다.
비문은 김영(金穎)이 짓고, 글씨는 김원(金薳)과 김언경(金彦卿)이 썼는데, 첫 줄에서 일곱 번째 줄의 ‘선(禪)’자까지는 해서(楷書)로 김원이 썼고 ‘사(師)’자 이하는 행서(行書)로 김언경이 썼다. 이것은 아마도 김원이 중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였던 김언경이 이어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일찍이 청(淸) 말기의 금석연구가 섭창치(葉昌熾)는 이 비에 대하여 그의 저서 『어석(語石)』에서 “일비양인서일칙(一碑兩人書一則)”이라고 평한 바 있다.
비신을 받고 있는 귀부는 얼굴이 용두(龍頭)처럼 변하였으며, 이목구비의 조각이 뚜렷하여 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 등 뒤에는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이 등 전체를 덮고 있으며, 등 가운데 구름문과 연꽃을 돌린 비좌(碑座)를 설치하여 비신을 받게 하였다. 이수는 아래에 구름문을 조각하고 비제의 좌우에 대칭적으로 반룡(蟠龍 : 승천하지 않은 용)을 조각하였는데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비는 9세기 말경의 석비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