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정(瀞)·준(浚) 등이 유고를 모아 편차한 것을 1487년(성종 18) 왕이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 초간본인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초간본이 거의 인몰되었다가 7세손 숙(瀟)이 경상도 영천군수로 있을 때 완질을 찾아내어 1645년(인조 23) 이식(李植)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1922년에는 신흥우(申興雨)가 신용체(申龍體)의 발문을 첨가하여 청주에서 간행하면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속편 부록으로 함께 발간하였다. 권수에 서거정(徐居正)·홍응(洪應)·김뉴(金紐)·김종직(金宗直)·임원준(任元濬) 등 5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17권 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부(賦) 6편, 권2·3에 오언소시(五言小詩) 86수, 권4∼7에 칠언소시 361수, 권8에 오언사운(五言四韻) 36수, 권9에 칠언사운 49수, 권10에 오언고시(五言古詩) 51수, 권11에 칠언고시 30수, 권12에 요해편(遼海篇) 23수, 권13에 가훈·책(策), 권14에 기, 권15에 서, 권16에 제(題)·발, 권17에 행장·신도비 등, 그리고 보유와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그는 명문장가 또는 음운학자로, 그리고 외교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 시문집에는 그러한 면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가훈은 변절자로 지탄을 받았던 저자로서 근신·권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그의 시문을 많이 유실한 처지에서 이루어져서 소루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