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계일고 ()

목차
관련 정보
봉계일고
봉계일고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홍세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0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차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홍세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0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목판본. 1900년 12대손 학종(學鍾)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유도헌(柳道獻)의 발문과 낙종(洛鍾)의 지(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8수, 계장(啓狀) 7편, 서(書) 3편, 잡저 1편, 권2는 부록으로 교유(敎諭) 3편, 행장·시장(諡狀)·묘지명·제문 각 1편, 증유(贈遺) 2편, 난중잡록초(亂中雜錄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계장의 「청명상벌계(請明賞罰啓)」는 함경도순찰사(咸鏡道巡察使)로 있을 때 올린 것이다. 북방의 방비가 허술해 오랑캐가 침입한다는 사실과 왜적이 입북(入北)했을 때 각 수령(守令)이나 군민(軍民)의 공과(功過)가 다르니 이에 대한 상벌을 엄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파간람수재계(請罷奸濫守宰啓)」 역시 함경도순찰사로서 올린 것이다. 함흥 이남의 7읍이 진황(陳荒)과 수재(水災)로 아사(餓死) 지경에 빠지고 안변(安邊)에는 전염병과 홍역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데, 문천군수(文川郡守) 정곤(鄭鵾)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조세 징수에만 힘을 쓰니 마땅히 벌을 주어야 하며, 경흥군사(慶興軍士) 김광국(金匡國)은 오랑캐가 약탈해갈 때 의(義)를 굽히지 않았으니 표창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밖에 「청치토호계(請治土豪啓)」·「조도군민계(調度軍民啓)」·「청포상납곡인계(請褒賞納穀人啓)」·「청치운량지완죄계(請治運糧遲緩罪啓)」 등은 토호의 정치, 평안도의 군량미 조달, 공이 있는 백성의 포상 건의 등 임진왜란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자료들이다.

서(書)에도 임란 당시의 양곡 모집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러한 글들은 평안도·함경도의 수령 및 군관들이 왜적의 침입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보여준다.

잡저의 「평안도조도절목(平安道調度節目)」은 평안도조도사로 있을 때의 50가지 절목을 기록한 것이다. 전세·군량·노비신공(奴婢身貢)·승군(僧軍)·염세(鹽稅) 등의 정부시책을 적었다.

「난중잡록초」는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에서 저자의 행적만을 뽑은 것이다.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해권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