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절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논으로 개간되었다. 봉림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림산문의 주찰(主刹)로 원감현욱(圓鑑玄昱)이 이곳에서 띠를 엮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제자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가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이 절을 창건하면서 스승이었던 현욱을 개산조(開山祖)로 모셨던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에 따르면 진경대사는 임나(任那) 왕족 출신으로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출생하여 923년(경명왕 7)에 70세로 입적하였으며, 탑비는 그의 문도들에 의해 다음해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 상단의 논에는 석탑의 옥신 1매가 남아 있는데, 높이 48㎝, 폭 79㎝, 우주의 폭 16㎝이다. 또 논두렁이 무너진 지점에서 상당히 많은 고려자기 파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이 절이 고려시대에도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있었던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절터에 있었던 삼층석탑은 창원시 지귀동에 있는 상북초등학교 교정에 옮겨 놓았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27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