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북쪽 정상부 가까이 있는 이 절터에는 파괴된 석굴(石窟) 2기가 있고 암벽에는 마애불 1기가 조각되어 있다.
석굴은 모두 천장이 내려앉아서 원형을 잃었으나 양식은 이명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인근의 다솔사(多率寺) 보안암(普安庵)의 석굴과 같으며, 그 중 마애불상이 있는 석굴은 보안굴보다 훨씬 큰 규모이었던 듯하다.
이명산을 사이에 두고 보안암과 양립하여 이러한 석굴사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이 지역 불교건축이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절터에 있는 하동 이명산 마애여래좌상은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는데, 암벽을 다듬어 감실(龕室)의 효과를 내면서 불상을 조각하였다. 그러므로 암벽 자체가 광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머리는 높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으며, 머리 아래는 얕게 새겨 신체는 평면적이며 세부의 표현은 선각(線刻)으로 처리하였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육계(肉髻)는 높고 크다. 상호(相好)는 매우 풍만한데 턱은 군살이 지고 코와 귀는 넓고 크며 입술은 두툼하면서 꼭 다물고 있으므로 미소가 표현되지 않아 근엄함을 느끼게 한다.
목에는 음각선으로 삼도[三道:악인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개의 괴로운 세계. 지옥도 · 축생도 · 아귀도]를 표현하였으며 옷주름은 마멸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가슴에 U자 모양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통견(通肩)의 옷차림임을 알 수 있다.
수인(手印)을 보면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펴서 시무외인[施無畏印: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보호하여 두려운 마음을 없게 하는 일]을 취하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내려 놓았는데 자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대좌는 표현하지 않았다. 이 불상은 넓고 큰 상호나 간략하고 치밀하지 못한 세부표현 등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