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완(李岏). 자는 자첨(子瞻). 아버지는 중종이고, 어머니는 희빈홍씨(熙嬪洪氏)이며,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영의정 정유인(鄭惟仁)의 딸이다.
1545년(인종 1) 인종의 병사를 계기로 정세를 만회한 이기(李芑)·윤원형(尹元衡) 등은 정권의 기반을 굳히고자 을사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고, 아울러 종친 중에서 명망이 있었던 봉성군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임백령(林百齡)은 때마침 하옥된 이덕응(李德應)을 위협하여 봉성군을 추대하여 역모를 꾀하였다고 거짓 자백하게 하여 죄를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기는 “인종의 병이 위독할 때 윤임(尹任) 등이 봉성군으로서 왕위를 이으려고 하다가 형세가 불가하여 명종에게 전위하였다.”고 참소하는가 하면 1546년 가을에는 김명윤(金明胤)이 밀계로서 익명서를 올려 모역을 고변하니, 양사(兩司: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대의로 처벌을 논의, 마침내 울진에 유배되고, 이어서 송인수(宋麟壽)의 옥사로 인하여 사사되었다.
1570년(선조 3) 이준경(李浚慶)의 계청(啓請)으로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고 복관되었다. 시호는 의민(懿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