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봉(李㦀). 성종의 여섯째아들이고, 어머니는 귀인(貴人) 정씨(鄭氏)이며, 부인은 평양조씨(平壤趙氏)로 증(贈) 좌찬성(左贊成) 조기(趙紀)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은 일찍이 모후 윤씨(尹氏)가 폐위, 사사된 것은 후궁 정씨·엄씨(嚴氏)의 소행 때문이라 하여 두 후궁을 손수 때려죽이고 봉안군을 옥에 가두었다가 이천(伊川)에 귀양보냈다. 이듬해 동복 형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과 함께 사사되었다. 중종반정 뒤 관작이 복구되었다. 1871년(고종 8)에 정민공(貞愍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