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 8책. 고활자본. 1783년(정조 7) 그의 아들 백휴(百休) 및 제자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아들 백휴가 쓴 후지(後識)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부(賦) 2편, 시 219수, 권3에 소 8편, 권4에 강의(講義) 4편, 권5∼8에 서(書) 41편, 권9에 잡저 27편, 권10·11에 역학십이도(易學十二圖)와 독학전보변(讀學塡補辨), 권12·13에 서(序) 10편, 기(記) 20편, 제발(題跋) 16편, 권14에 잠 3편, 명 5편, 찬(贊) 3편, 축사 5편, 상량문 9편, 제문 52편, 애사 1편, 고문(告文) 2편, 축문 2편, 권15에 묘표 7편, 행장 4편, 부록에는 세계·연보·묘지·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그가 은거 생활을 할 때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은연중 토로한 것이 많다. 소에는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 등 누차 여러 벼슬에 천거되었지만, 그 때마다 사직한 상소문이 대부분이다.
강의 4편은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에서 『서명(西銘)』·『심경(心經)』 등을 시강(侍講)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을 기록한 것이다. 서(書)에는 그의 스승인 권상하(權尙夏)를 비롯하여 동문인 한원진(韓元震)·윤봉구(尹鳳九) 등에게 보낸 서찰 등이 보인다. 경의(經義)에 관한 문답 또는 심성에 관한 문제를 논의한 것이 많다.
잡저에는 「본연기질변(本然氣質辨)」·「물물각구오상변(物物各具五常辨)」·「사단변(四端辨)」 등 심성론에 관한 문제를 다룬 논설들이 많다. 그는 호락(湖洛)논쟁에서 한원진 등과 함께 호론(湖論)에 속하였던 인물이다.
권10의 「태극지도(太極之圖)」·「양의지도(兩儀之圖)」·「사상지도(四象之圖)」 등 12개 도표는 『주역』에 관한 연구 내용을 체계화시킨 것으로서, 심성론에 관한 그의 학문적 견지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권11의 「독학전보변」은 『대학』의 3강령·8조목을 경(經)으로 삼고, 이기심성(理氣心性)의 설을 위(緯)로 삼아 48개 항목에 걸쳐 자신의 뜻을 밝힌 것으로, 그의 학문적 깊이와 폭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