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만4198㎡. 경내에 ‘자성대(子城臺)’ · ‘만공대(萬公臺)’가 있다.
임진왜란 때 침범한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부산포왜성(증산왜성)의 지성(支城)으로 쌓은 것으로서, 1593년(선조 26) 일본인 모리(毛利輝元) 부자에 의하여 일본식 성으로 축성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의 부산진성은 현재 정공단(鄭公壇)이 있는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뒷산인 증산(甑山)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은 부산진성을 파괴하였으며, 산꼭대기에 부산포왜성(증산왜성)을 쌓고 이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해안가에 지성을 쌓았으니 곧 자성대이다.
왜군을 몰아낸 뒤에 만세덕 휘하의 군대가 일시 주둔하였으며, 그 뒤에는 자성대를 중심으로 성을 쌓고 사대문을 축조하고 관아(官衙)를 정비하여 부산진 첨사영(僉使營)으로 사용하였다.
사대문 가운데 동문을 진동문(鎭東門), 서문을 금루관(金壘關), 남문을 진남문(鎭南門), 북문을 구장루(龜藏樓)라 하였고, 성 안팎에는 공진관(拱辰館, 客舍) · 검소루(劒嘯樓, 東軒) · 제남루(濟南樓, 閉門樓)를 비롯하여 청상루(淸霜樓, 軍器所) · 관청 외에 15채가 있었다.
또 성밖에는 진남루 외에 4채가 있었다. 특히 서문의 양측 성곽에 끼여 있었던 우주석(隅柱石)에는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현재 왜성임을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성지(城址)는 최고 10m, 최저 1.5m의 성벽뿐이다. 1974년에 동문 · 서문 · 장대를 신축하였으며 동문은 건춘문(建春門), 서문은 금루관, 자성대 위의 장대는 진남대(鎭南臺)라 하고, 1975년에는 동문 주위에 성곽을 신축하였다.
자성대에는 임진왜란에 참가한 명장(明將)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 세운 천장군기념비(千將軍記念碑)가 남아 있고, 동쪽 산중턱에는 최영장군비각(崔營將軍碑閣)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