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건축
유적
국가유산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건립된 백제계 석조 불탑. 석탑.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扶餘 長蝦里 三層石塔)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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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건립된 백제계 석조 불탑. 석탑.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건립되어 있고 그 형식을 충실히 모방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석탑에 소속되는 대표적인 탑이다.

내용

높이 4.85m의 이 탑은 일반형 석탑의 형식을 따라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부(塔身部)와 상륜부(相輪部)가 건립되었는데, 기단은 일반형 석탑의 건축기단이 아닌 계단식 기단으로, 거칠고 장대한 판석재(板石材)로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그 위에 같은 여러 장의 석재로 규격을 줄이면서 3단을 쌓았으며, 이 위에 다시 1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3층의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여러 장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어, 역시 일반적으로 돌덩이를 겹쳐 쌓아 일반형 석탑과는 양식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층 탑신석은 네 귀퉁이에 각 1주의 방형 석주(石柱)를 다른 돌로 만들어 세우고 그 사이에 긴 판석을 세워 면석(面石)을 삼았는데, 네 귀퉁이의 방형 석주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방형 석주는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어 탑신이 전체적으로 위가 좁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탑신석 위에는 1장의 판석을 얹고 이 위에 다시 폭이 넓고 소로[小累]모양을 한 1장의 판석을 얹어 옥개석을 받고 있다. 언뜻 보면 높은 옥개받침같이 보기 쉬우나, 이것은 옥개석과는 별개의 돌이고 또 그 형식과 가구(架構)의 의장(意匠)이 받침단으로 조성된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2층과 3층의 탑신석도 같은 양식과 조성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1석씩으로 조성되었으며, 높이와 넓이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네 귀퉁이의 방주형은 상하의 너비가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3층 탑신석의 북면에는 장방형의 감실형(龕室形)이 개설되었고, 다른 면은 상단에서 중간까지만 깊은 홈을 팠는데, 이 홈은 면석이 간략화된 것인지 감실형 장식인지 분간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표현은 전형적인 모습에서 퇴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층의 옥개석은 백제계석탑 가운데 가장 얇고 넓은데 초층은 4매, 2층은 2매, 3층은 한 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추녀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각 모퉁이의 전각(轉角)에 이르러서 아주 미세한 반전(反轉)이 있을 뿐이다. 낙수면의 경사는 극히 완만하지만 네 귀퉁이의 합각선은 예리한 편이며, 옥개석 정면에는 2단의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의 탑신석을 받고 있다. 따라서, 2·3층의 탑신부는 탑신 자체의 크기가 낮아지고 좁아졌으나, 이 높은 굄 2단으로 말미암아 넓고 큰 옥개석에 잘 어울리도록 되어 있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는데 현재 3층 옥개석 위에 방형의 석재 하나가 놓여 있어 이것이 노반석(露盤石)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특징

이 탑은 정림사지석탑과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운 위치에 건립되었으며 기단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정림사지오층석탑이나 비인오층석탑에 비해서는 기단의 모습 등이 매우 간략화 된 모습이다. 또한 옥개석 상부에 있는 2단의 탑신괴임은 이 탑과 정읍은선리삼층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형식으로, 거의 수평에 가깝고 광대한 옥개석을 시각적으로 보완하여 낮고 좁은 2, 3층의 탑신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있다.

탑 안에서는 그 동안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1931년에 초층탑신에서는 범문다라니경(梵文陀羅尼經) 단편과 은제합(銀製盒)·목제합(木製盒)·상아제불상(象牙製佛像)·목제소탑(木製小塔)·수정·옥·은제환(銀製環) 등이 발견되었으며, 1962년 8월의 해체 수리 때에는 2층 탑신석 상면 중앙의 둥근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 41과와 금동제외호(金銅製外壺)와 은제내호(銀製內壺)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 조사되었다.

탑의 각 부재의 돌다듬기 수법이나 구조, 탑 안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에 의하여 볼 때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백제의 옛 땅이었던 충청·전라도에는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의 양식을 모방한 백제계 석탑이 전하고 있는데 이 석탑은 세장한 탑신에 과감하게 펼쳐진 옥개석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을 대표하는 탑이다.

참고문헌

『백제계석탑 연구』(천득염,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0)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보물(寶物) 2(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부여장하리석탑의 사리장치」(김영배, 『고고미술』 32, 1963)
집필자
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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