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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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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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경도 회령 · 경원에서 청나라와 공무역을 행하던 국제 무역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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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함경도 회령 · 경원에서 청나라와 공무역을 행하던 국제 무역 시장.
내용

조선 초기 1406년(태종 6)에 경성·경원에 무역소(貿易所)를 설치하고 여진인에게 무역을 허락하였다. 이 때 이들은 우마(牛馬)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와 조선측으로부터 소금·철 등을 바꿔갔으며, 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것이 후일 북관개시의 전신이었다.

그 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직후부터 청나라가 조선에 강요해 회령을 개시했지만 병자호란을 계기로 한 때 통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뒤 1638년(인조 16)영고탑(寧古塔)의 사람들이 청나라 호부(戶部)의 표문(票文)을 가지고 와서 농기구를 무역해 가면서 회령개시가 재개되었다.

회령개시에서는 매년 양국 관리의 감시 아래 일정한 수량에 한정해 교역을 허락하는 공무역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수적으로 사무역도 이루어졌으며 점차 번창하였다. 이에 따라 만주동북의 변민(邊民)은 그들의 일상 생활용품을 이곳에서 조달하다시피 하였다.

여기에는 주로 영고탑·오라(烏喇) 지방의 상인이, 뒤에는 봉천·북경 등지의 상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조선에서는 함경도 지방 상인을 중심으로 서울 등지에서도 모여들어 교역하였다. 개시의 시기는 봄·가을 또는 겨울에 열렸으나 효종 때부터 동지 이후로 결정되었다.

이 때 청나라에서는 통관(通官)을 파견하고 영고탑·오라의 관헌도 상인·축마(畜馬)를 이끌고 왔는데, 이들이 머무르는 동안 접대·사료 등 일체를 우리측에서 부담하였다. 그러자 교역하러 오는 인원은 해마다 늘어 관민 600여인, 소·말·낙타가 1,150여필에 달할 때도 있었고, 체류 기간도 80∼90일에 이르러 조선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한편 1645년(인조 23)부터 경원에서도 청나라와 무역이 시작되었다. 이 해 암구뢰달호호(巖丘賴達湖戶)의 사람들이 경원에 와서 농기구를 무역해 간 것을 계기로 그 뒤 격년제로 무역이 실시되었다.

이 때 청나라 사람들은 소록피(小鹿皮)를 가지고 와서 소·보습·솥 등과 교환하였다. 그 교환 비율은 보습 1개에 소록피 2장, 솥 1개에 소록피 1장이었다. 이처럼 정해진 수량에 한정해 공무역을 허락하고 사무역은 일체 금하였다. 그러나 점차 민간 상인에 의한 밀무역이 성행하였다.

처음에는 매년 회령개시가 열렸으나 뒤에 격년제의 경원개시(慶源開市)가 열리게 되었다. 회령에서 단독으로 열리는 것을 단개시(單開市),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것을 쌍시(雙市)라 하였다. 그리고 이를 총칭해 북관개시 또는 북도개시(北道開市)라 했으며, 이를 정6품의 무관인 북평사(北評事)가 통할하였다.

북관개시에서 거래된 무역품은, 수출품으로 소·말·돼지·쌀·종이·연(筵)·농(籠)·주방구·호피(虎皮)·해삼·모발·재목 등과, 수입품으로 조화(造花)·피혁·담뱃대·녹각·구리·개·고양이 등이었다. 처음에 공무역장으로서의 북관개시가 점차 밀무역화하면서 이에 따른 각종 폐해가 발생, 양국간에 사소한 분쟁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때때로 이를 개혁해 오다가 개항 이후 1884년(고종 21) 양국간에 ‘길림여조선수시무역장정(吉林與朝鮮隨時貿易章程)’을 체결해 종전의 개시를 폐지하고 회령은 새로이 자유 무역시장으로 변모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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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통문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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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공업사」(유교성, 『한국문화사대계』 Ⅱ,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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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상업자본의 성장」(강만길, 『한국사연구』 1, 1968)
「조선후기대청무역의 전개과정」(유승주, 『백산학보』 8, 1970)
집필자
유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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