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총높이 1.41m, 비높이 1.05m, 너비 2.25m이다. 원래 금위영은 소동문(小東門) 안에 있었으나 그 지세가 높아 비바람이 몰아치면 무너지기 쉬우므로 보국사(輔國寺) 아래로 옮기게 되었다. 금위영 이건기비는 이러한 사실을 적은 비이다. 비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뒷면은 땅에 묻혀 있다. 장대석(長臺石)으로 지붕돌을 씌웠는데 전면에만 낙수면을 새겼다.
와비(臥碑)의 형식으로 비문의 끝부분에 ‘을미즉대명숭정갑신후칠십이년야도제조이이명지(乙未卽大明崇禎甲申後七十二年也都堤調李頤命識)’이란 명문으로 보아 1715년(숙종 41)에 도제조 이이명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1711년 4월에 훈련도감 · 어영청 · 금위영으로 하여금 백제의 고성인 북한산성을 나누어 개축하게 하였다. 각 군영을 설치하여 군량을 저장하고 유사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성곽의 개축은 그해 10월에 완료되었다.
금위영은 능암 동남쪽에서 보현봉(普賢峯) 아래까지 2,821보를 쌓았다. 1,065개의 살밭이[垛]와 2개의 성문(대성문, 소동문)이 있는데 성문에 암문(暗門)을 설치하였다. 이외에 장대(將臺) · 방옥(房屋) · 성곽 등을 축조하였다.
보국사 · 보광사 · 용암사 · 태고사의 4개 사찰이 성내에 있으며, 군영의 막사와 창고 90여칸은 3월에 보국사 아래로 옮겼는데 공사는 8월에 준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