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투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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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 방습을 위한 덧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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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방한 · 방습을 위한 덧신.
내용

≪태종실록≫에 매우 추운 날의 전정조회(殿庭朝會)와 행행(行幸)·영송(迎送) 때에만 착용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병이 있고 연로하여 이를 신기를 원하는 자는 다른 경우에도 착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기록과 1469년(예종 1) 정월 조신사(朝臣士)의 궐내에서의 투혜착용을 허락한 기록 등을 보면 방한용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임하필기 林下筆記≫에는 장악관(掌樂官) 박시량(朴時亮)이 금제(禁制)를 무릅쓰고 공회(公會 : 공무로 인한 모임) 때 진흙에서 화자(靴子 : 관복에 신던 목이 긴 신) 위에 분투혜를 신었다는 기록이 있어 방습용임을 말해준다.

분투혜는 상류계급에서 착용하던 것인데 ≪세종실록≫에 의하면 시장의 상인·공인 및 공사천례(公私賤隷)와 직책이 없는 사람까지도 투혜를 착용하여 가죽값이 폭등하고, 한편 도살을 금하니 소와 말의 도적이 날로 늘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왕은 예조에 분부하여 상하를 밝히고, 제도를 정하여 하루 속히 나쁜 근원을 없애주도록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429년(세종 11) 3월 현직과 산원(散員)으로 동서반 7품 이하는 투혜의 사용을 금지하며, 관청이나 개인에 예속된 천인은 투혜의 사용을 금하고, 무공(武工)·악공(樂工) 중에서 7품 이하는 음악을 연주할 때 외에는 투혜착용을 금하는 금지령을 내렸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임하필기』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7)
「화제(靴制)」(조효순, 『한국의 복식』, 문화재관리국, 1982)
집필자
조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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