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否)는 불(不)과 같은 자로서, 본래는 ‘새가 위로 날아가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라는 뜻으로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인데, 비괘에서는 ‘막힌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음은 ‘비’이다.
괘상은 하늘 아래에 땅이 있는 형상으로, 가벼운 천기는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지기는 아래로 내려와 두 기운이 교합, 소통되지 못하여 막혀 있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을 「단전(彖傳)」에서 “천지가 교합하지 못하여 만물이 소통되지 못하며 상하가 교합하지 못하여 천하가 무정부 상태가 된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순양괘인 건괘가 외괘이고 순음인 곤괘가 내괘이기 때문에(양은 군자이고 음은 소인이므로) 소인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고 군자의 세력은 축소되는 상황이 된다. 괘사에서 “비는 사람이 아니니, 군자가 올바름을 지키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고, 「단전」이 “소인이 안에 있고 군자가 밖에 있으니, 소인의 도가 성장하고 군자의 도가 소멸된다”라고 해석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11번째 괘인 태괘(泰卦)와 정반대이다. 그러나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원리에 의하여 비색한 상황은 중반을 넘어서면 차츰 태통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5효는 ‘비색함이 그치는 단계’이고 마직막효에 이르면 “상구는 비색함이 기울어지니, 앞에서는 비색하지만 뒤에는 기쁨이 올 것이다” 라고 하여 극즉반(極則反)의 역리(易理)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