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패(貝)’와 ‘훼(卉)’의 합성어인데, 고대에는 조개껍질로서 장식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꾸미다’ 즉 ‘문식(文飾)’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비괘는 산 아래에 불이 타오르는 형상인데, 이것은 산의 초목들이 불빛을 받아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서 장식의 의미를 갖는다.
『논어』에서 “문(文: 꾸며 놓은 외적인 형식)과 질(質: 내적인 실질적 내용)이 조화를 이룬 뒤에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문’과 ‘질’은 조화,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적인 면을 꾸미는데 힘쓰다 보면 실질적인 내용이 손상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괘사에서 “비는 형통하니, 일을 실행해 나가는 것은 조금 이롭다.”고 하여 문식하는 것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전(彖傳)」에서 “비는 형통하니 유(柔)가 와서 강(剛)을 문식하기 때문에 형통하고, 강이 나뉘어 올라가 유를 문식하기 때문에 ‘일을 실행해 나가는 것은 조금 이롭다’라고 한 것이니, 천문(天文)이다.”고 한 구절은 이 점을 부연 설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는 ‘문’이고, ‘강’은 ‘질’인데, 유가 강을 문식하는 것은 질이 승(勝)하기 때문에 문식을 가함으로서 조화를 이룬 것으로 근본이 정립된 뒤에 형식이 갖추어진 것이다. 반면에 강이 유를 문식한다는 것은 문이 승하기 때문에 질로서 절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괘 6효의 전개 과정을 보면, 내괘는 꾸밈의 정도가 심해지지만 외괘에 오면 꾸밈이 절제되어 문식의 극치인 상효(上爻)에서는 “꾸미는 것을 희게하는 것이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고 하여 외적인 꾸밈이 제거된 질소(質素)한 본 바탕으로 돌아오게 된다.
「잡괘전(雜卦傳)」에서 “비는 무색(无色)이다.”고 한 것처럼 최상의 문식은 아무런 꾸밈도 없는 본래의 질박함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