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영(領)의 부지휘관으로 정5품의 중낭장(中郎將)이 있었는데, 그것이 조선 건국 초의 10위 50령제도(十衛五十領制度) 가운데 계속 지속되다가 1394년(태조 3) 사직으로 개칭되었다.
부호군(副護軍)의 하위이고 부사직(副司直)의 상위직으로 모두 14인이며 오원(五員)이라는 간부사관층(幹部士官層)의 상위를 이루면서 서울의 각문(各門) 가운데 일부의 파수책임을 맡는 등 군사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봉급을 지급하기 위하여 임명한 관직으로서 실무는 없었다. 한편, 조정에 와서 조공하는 여진족의 추장에게도 이 관직을 명예직으로 주었으며, 때로는 이에 해당하는 봉급과 대우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