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1.6m, 너비 1.3m. 비는 1387년(우왕 13)에 세워졌다. 비문은 전체 15행에 202자를 각자(刻字)하였으며, 달공(達空)이 비문을 짓고 수안(手安)이 비문을 썼으며, 김용(金用)이 명문각자하였고 대화주(大化主) 각선(覺禪)이 편안하도록 지킨다고 하였다.
이 석비는 장방형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비문을 각자하였으므로 비면(碑面)이 자연면 그대로 굴곡이 많다. 따라서 글자 크기가 같지 않고 정간(井間 : 간살)도 없어서 가로·세로가 맞지 않으며, 자수(字數) 또한 각 행마다 같지 않게 되어 있으나 글자 모두 고졸(古拙 : 예스럽고 아담한 멋이 있어)하여 당시의 지방자체(地方字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매향비의 서두의 비제(碑題)는 ‘천인결계매향원왕문(千人結契埋香願王文)’으로 4,100명이 모여 침향목(沈香木)을 묻어서 미륵불(彌勒佛)이 당래(當來 : 마땅히 올 때)하여 용화삼회(龍華三會 : 미륵이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하는 법회)하기를 기다려 대원(大願)이 이루어지도록 기구하는 내용이다.
즉 4,100명이 결계(結契)하여 내세(來世)의 행운을 축원하며 왕의 만수무강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한 민중정신을 표출한 내용이다. 매향이란 원래 중국에서 일찍이 미인을 매장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용어로서, 침향목을 묻어 무상묘과(无上妙果)를 기구(祈求)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예이다.
명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행(行)과 원(願)이 서로 도와야 비로소 무상묘과를 구하게 되니, 만약 행에 있어 원이 없으면 그 행은 반드시 외로운 것이 되며 또 원이 없는 행은 헛된 것이라, 행이 외로우면 그 맺음은 없는 것이며, 또 원이 허(虛)하면 복(福)이 떨어지므로 행과 원이 함께 움직여야만 비로소 묘과(妙果 : 보리 열반과 같은 아주 뛰어난 결과)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빈도(貧道)와 여러 천인(千人)이 함께 대원(大願)을 발하되 침향목을 묻어 자씨하생(慈氏下生 : 彌勒佛當來)으로 용화삼회하기를 기다려서 그 증명을 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 때의 침향이란 참나무를 베어 바닷가에 묻어서 천년이 지나 침향이 된다 하므로, 앞으로 천년 뒤를 위하여 다량의 참나무를 묻는 것이 상례이다. 불사(佛事) 중에도 이토록 앞을 내다보고 이루려는 것은 원대한 장래를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