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현성의 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환도산(丸都山)에 위치하고 있어 환도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성의 주위는 산봉우리들이 첩첩히 둘러싸고 있어 대단히 험준하다.
산성의 남쪽 바로 아래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통구하(通溝河)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산성의 자연적인 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 구실을 하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흘러간다.
산성의 서쪽은 칠성산(七星山)으로 험준한 봉우리들과 연결되어 산성의 자연 방어물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성의 동쪽은 통구하를 따라 비교적 넓은 산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산성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지형으로서 남쪽에서 바라보면 병풍을 두른 듯한 형세이다.
산성은 환도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넓은 계곡의 경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은 동·서·북 3면은 전체적으로 험준한 지형과 암반 등을 이용하여 자연 성벽으로 삼고, 산마루의 평탄한 곳은 군데군데 돌을 다듬어 성벽을 축조하였다.
특히 동남쪽의 경사진 부분은 높고 가파른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이용하고 있다. 성벽의 외벽은 돌을 잘 다듬어 쌓았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들여쌓아 약간 경사지도록 한 퇴물림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축조 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는 북쪽의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고, 높이는 대략 5m 정도이다. 산 능선의 기복에 따라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성벽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다. 낮은 지대인 남쪽은 대부분 성벽을 높이 쌓았는데, 현재는 많이 무너진 상태이다.
산성의 평면은 산 능선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매우 불규칙한 형태이며, 성벽의 총길이는 6,951m이다. 성벽 위에는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설치되었는데, 높이 0.78∼1.3m에 너비가 0.73∼1m 정도로 일정하지 않다.
여장의 안쪽에는 장방형의 깊은 구멍이 설치되었는데, 그 간격은 1.7m이고 2m가 되는 곳도 있다. 이 구멍은 성을 방어하기 위한 지주대를 설치한 용도로 짐작된다.
성문은 모두 5개가 설치되었는데, 동쪽과 북쪽에 2개씩이며, 남쪽에 1개가 있다. 가장 낮은 계곡 입구에 있는 남문은 산성의 정문 구실을 하였으며, 방어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안쪽으로 둥글게 굽어 들어간 곳에 주위의 성벽을 장방형으로 쌓아 옹성(甕城)을 구축하였고, 옹문(甕門) 아래로는 배수로가 있어 성안의 계곡물이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남문 좌우벽에는 평대(平臺)를 구축하였는데,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각루(角樓 : 성의 굴곡부·우각부·돌출부 등의 요소에 지은 다락집)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서북 모퉁이 산정상부에는 지름 8m의 원형 단을 돌로 쌓았는데, 일종의 전망대 기능을 하였을 것이다.
성안에는 2개의 샘물이 있으며, 성안 남쪽 가운데에는 속칭 음마지(飮馬池)라는 연못이 있어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는 다듬은 돌로 쌓은 연못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성안에는 매우 넓은 경사면이 펼쳐져 있고, 이곳에 3곳의 건물지가 있다. 하나는 큰 봉분처럼 솟은 곳으로 높이 11.7m에 윗면의 한 변이 6m 정도로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성 안팎이 모두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군사지휘소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점장대(點將臺)의 뒤편으로는 평평한 대지가 마련되어 있는데 현재도 줄지어 있는 초석(礎石)이 확인되고 있으며 병사들의 거주지로 추정된다.
점장대의 동북쪽의 넓은 경사면에는 궁전터가 있다. 남북 길이 92m, 동서 너비 62m 정도로, 경사면으로 올라가면서 3층의 대지를 만들어놓았다. 각 층은 돌로 1m 높이로 단을 쌓았으며, 중간의 단이 가장 넓고 큰 규모이다.
전체 넓이는 5,700㎡에 이른다. 현재도 열을 이룬 수십 개의 초석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시대의 기와가 널려져 있다.
한편 성안에는 현재까지 고구려시대의 무덤이 37개가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이 석총(石塚)이고 토총(土塚)은 1기뿐이다. 석총은 서벽 안쪽의 산비탈에 분포하고 있으며, 토총은 궁전지 서남쪽 30m 지점에 있다.
이 고분은 산성의 사용시기와 관련하여 여러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산성자산성은 고구려의 도성인 환도성(丸都城)에 비정되고 있다. 고구려의 도성은 평지성(平地城)과 산성(山城)이 하나의 조(組)를 이루어 조성되었는데, 집안에는 평지성으로서 집안현성, 산성으로는 산성자산성이 있다.
문헌기록에는 집안시대의 고구려의 도성으로 국내성(國內城)과 환도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중 국내성은 집안현성에, 환도성은 산성자산성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