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주 남산 서쪽 사면 삼릉 계곡의 넓은 바위 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바위 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깊이 패여 있는 균열선을 배려하여 그 윗부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불신을 부조하고 그 아랫부분에 연화대좌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얼굴과 손 그리고 상체의 옷자락 부분만 얕은 돋을새김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조각 솜씨는 치졸한 편이다.
소발(素髮 : 민머리)의 머리와 좁은 이마에 그려진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모두 음각선으로 윤곽만 표현되었다. 눈은 깊은 홈을 파 놓은 듯 간략하게 처리하였고, 눈초리가 매우 추켜올려져 있다.
눈썹 밑이나 코의 옆 부분, 입술 주변을 얕게 파내는 방법으로 이목구비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퉁퉁 부은 듯한 넓은 얼굴의 윤곽선과 함께 균형이 깨진 모습이다. 목에 그어진 세 줄의 선 외에 얼굴 윤곽을 따라 턱 부분에 한 개의 선이 더 음각되어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며,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자락이 몸을 따라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다리 위로 내리뜨려졌다.
이 모습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삼릉곡석조약사여래좌상이나 경상북도 영주의 흑석사석조약사여래좌상(黑石寺石造藥師如來坐像)과 같은 통일신라 8세기 후반에서 9세기경에 제작된 불좌상의 착의법을 따르고 있다. 다만 왼쪽 어깨가 넓게 노출되어 어색하게 보이는 점은 조각가의 미숙한 솜씨 때문이라 생각된다.
옷주름은 대체로 고른 간격의 계단식 주름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전법륜인(轉法輪印 : 부처가 설법 교화함을 보이는 손가락 모습)을 짓고 있다. 왼손은 실제의 손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불합리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하체에는 옷주름 표현이 거의 없고, 연판(蓮瓣 : 연꽃잎)의 윤곽만을 선각한 연화대좌가 상 전체를 넓게 받쳐 주고 있다. 이 상은 비록 치졸한 솜씨로 제작되었으나 신체 비례가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867년(진성여왕 1년)에 조성된 경상북도 봉화의 축서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鷲捿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 등 9세기 불상을 연상시키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 표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과 8∼9세기 불상들의 착의법을 따른 점으로 보아,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곧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의 제작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전법륜인의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의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삼존 판불(雁鴨池出土金銅三尊板佛)이나 고려 초기의 법주사마애여래좌상 등 몇 예를 꼽을 수 있다. 이 남산의 불상이 그 수를 더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