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감의 높이 43.3㎝, 너비 38㎝, 측면 너비 21㎝. 불상 높이 16.5㎝. 전각형(殿閣形) 불감(佛龕)이며 높이 16.5㎝의 불좌상 2구가 봉안되어 있으나 원래 3구였다고 한다.
지붕은 기왓골이 표시된 우진각(隅-閣: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형식이며 치미(鴟尾: 대마루 양 끝에 세운 매 머리 모양의 장식)를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정면에 달린 두 짝의 문비(門扉: 문짝) 겉면에는 사격자문과 구름무늬, 연당초문이 정연하게 선각(線刻: 선으로 새김.)되었다.
문비 안쪽 면에는 인왕상이 1구씩 거의 대칭형으로 타출(打出: 철판 밑에 모형을 대고 두드려 그 모형과 같은 모양이 나오게 함.), 양각(陽刻: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되어 있다.
내부의 정면 벽에는 불보살삼존과 10구의 나한상, 사천왕, 타방불로 이루어진 군상이 타출되어 있다. 본존상이 비로자나불의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회도이다. 좌측 벽면에는 약합을 든 약사불을 주존으로 한 삼존불을, 우측 벽면에는 설법인을 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을 각각 부조(浮彫: 돋을새김)하였다. 그리고 화려한 구름 문양이 여백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내부에 봉안된 불좌상들은 앙복련이 상하 대칭으로 배열된 티베트 불상 대좌 형식의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두 불좌상의 손 모양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없어진 본존의 좌우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구품인의 하품하생인에 해당된다. 상체가 앞으로 약간 숙여진 자세로 높은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에는 중앙 계주(中央髻珠)가 있다.
불의 표현은 문수사금동불좌상(1346년)과 같은 고려 후반기 불상의 주된 흐름을 따르면서 조금 간략해지고 경직된 표현을 보인다. 그 밖에 감 내부의 천정에는 능화형(菱花形)을 타출하고 그 안에 봉황 두 마리와 구름 문양을 타출하였다. 밖에는 연당초문을 빈틈없이 선각하였다.
천은사 금동불감은 전체를 볼 때 화려하게 장엄된 불전을 축소한 듯하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동불감이나 미국 포그미술관소장 금동불감 등 고려 후기에 제작된 같은 형식의 불감 가운데 가장 크고 제작 수준이 뛰어나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중요한 도상이나 문양들을 지니고 있어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나옹화상과의 관련설이 있는 이 불감은 천은사 뒤 노고단 중턱의 상선암에 있던 것이라 전한다. 불감 뒷면에 있는 조성기(造成記)를 보면 “造像信勝造藏金致造手 朴於山施主朴氏兩主綠化信音重寶信禪海王(조상신승조장금치조수 박어산시주박씨양주녹화신음중보신선해왕)”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불상은 신승, 불감은 김치·박어산 등이 만들었고, 박씨 부부가 시주하였으며, 신음 등 네 승려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조성 연대가 없어서 조성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양식으로 볼 때 14세기 불상의 흐름을 따르는 불좌상들 뿐 아니라 벽면 부조의 상들도 14세기 불화의 불보살상의 표현과 비교된다. 그리고 구름 문양은 공민왕릉의 문양과 유사하여 14세기 후반의 제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