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인 1348년(충숙왕 4)에 공민왕 대의 왕사 나옹 혜근(懶翁惠勤)이 머물면서 도를 닦았고, 조선 초인 1394년(태조 3)에는 태조의 왕사 무학 자초(無學自超)가 이곳에서 국운(國運)의 융성을 기원했으며, 이를 계기로 1398년에 왕명으로 중창 불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의 주2과 주3를 거쳤으며, 1880년(고종 17) 의민(義旻)이 명부전(冥府殿)을 지었고 이듬해 칠성각(七星閣)이 건립되었다. 삼막사는 조선시대에 서울 주변의 4대 명찰로 알려졌는데, 동쪽 불암산에 있는 불암사(佛岩寺), 남쪽 관악산의 삼막사, 서쪽 삼각산(북한산)의 주4, 북쪽 보개산의 심원사(深源寺)였다.
현존하는 전각으로는 육관음전을 비롯해 명부전 · 망해루(望海樓) · 대방(大房) · 칠성각 등이 있다. 삼막사의 주법당은 원래 대웅전이었는데 1990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여섯 관음을 모신 육관음전이 세워져 있다. 육관음전 앞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 석탑이 있는데 이 절의 승려였던 김윤후(金允候)가 몽골의 침입 때 적장 살리타〔撒禮塔〕를 살해하고 승전한 것을 기념해 세운 탑이라고 전한다.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 · 시왕(十∇王) 등의 상이 모셔져 있다. 망해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맑은 날에는 서해가 보인다고 하여 망해루라고 이름했다. 삼막사 동쪽에는 1707년(숙종 33)에 세워진 사적비가 있는데 앞면에는 사찰의 역사, 뒷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또 칠성각의 마애 삼존불은 자연 암석에 양각한 것으로 1763년에 조성되었다.
삼층 석탑과 사적비, 마애 삼존불과 명부전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