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로 지정되었으며, 비신 높이 395㎝, 너비 140㎝이다. 1639년(인조 17)에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세워진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이며,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거비(巨碑)이다.
비양(碑陽)에는 왼쪽에 몽고문(蒙古文), 오른쪽에 만주문(滿洲文), 그리고 비음(碑陰)에는 약 2.1㎝ 크기의 한문 해서가 새겨져 있으며 비액(碑額)은 전서(篆書)로서 “大淸皇帝功德碑(대청황제공덕비)”라고 적혀 있다. 비문(碑文)은 이경석(李景奭)이 짓고 오준(吳竣)이 해서로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전(篆)하였다.
이 비는 1636년 12월 청 태종이 대병을 이끌고 침공하였을 때, 남한산성에서의 항전을 뒤로하고 백성의 안위를 위해 인조가 삼전도에 나아가 항복한 사실을 보여주는 우리 민족 치욕의 유적이다.
본래 청 태조가 청나라와 조선은 형제로 보고 서로가 예우(禮遇)로써 대하고자 하였으나 조선의 조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청 태종이 대노하여 쳐들어와 한강 상류 삼전도에 주필(駐蹕 : 임금이 잠시 머무름)하고 항복 받은 사실을 영원히 기념하여야 한다는 강박(强迫)에 못 이겨 세우게 되었다. 따라서, 몽고문 · 만주문 · 한문의 3종 문자로 같은 내용을 담은 것은 이 비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