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7년(현종 8) 용담현령(龍潭縣令) 홍석(洪錫)이 본현(本縣)의 안자동(顔子洞) · 정자천(程子川) · 이천(伊川) · 주자천(朱子川) · 와룡암(臥龍岩)이라는 지명으로 인하여 중국의 안회(顔回) · 정호(程顥) · 정이(程頤) · 주희(朱熹) · 제갈량(諸葛亮) 등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5년(숙종 21) ‘三川(삼천)’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 · 희성재(希聖齋) · 사숙재(私淑齋) · 심락당(尋樂堂) · 재천루(在川樓) 등이 있었으며, 매년 봄 · 가을에 향사를 지내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