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경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에 있었다. 발해의 제3대 문왕 대흠무(大欽茂)가 755년 무렵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785년 무렵 다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천도하더니 제5대 성왕 대화여(大華璵)에 이르러 다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발해국이 망할 때까지의 수도였다.
≪요사 遼史≫에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상경용천부가 홀한하(忽汗河), 즉 지금의 목단강(牧丹江)변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발해국을 멸한 거란은 발해국의 옛 영토에 동단국(東丹國)이라는 괴뢰국가를 세워 이 상경용천부를 수도로 하고 천복성(天福城)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동단국의 수도를 요양(遼陽)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뒤 폐허가 되어 성터와 왕궁터가 남아 있다.
이 유적은 1933∼1934년에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에 의하여 조사, 발굴되었다. 이로써 1,200여 년간 지하에 묻혔던 발해국의 문화가 밝혀져, 발해역사의 해석에 많은 진전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