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바위그늘 유적 ( 바위그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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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바위그늘 유적
상시 바위그늘 유적
선사문화
유적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인류화석 · 동물화석 · 토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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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인류화석 · 동물화석 · 토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개설

서쪽으로 상시내가 흐르고 동북쪽으로 200m 높이의 석회암 산이 솟아 있다. 북쪽 영천리 산과의 사이에 측백나무 숲이 우거져 자라고 있다.

올도비시안기에 이룩된 석회암 줄기에 뚫어져 있고, 이 바위그늘의 네 곳이 유적이다. 북쪽으로부터 차례로 1그늘·2그늘·3그늘·4그늘로 불린다. 1그늘은 구석기시대, 2그늘은 청동기시대, 3그늘은 구석기시대 끝 무렵과 신석기시대이고, 4그늘은 발굴되지 않았다.

내용
  1. 1그늘

1그늘에서 발굴된 층위는 모두 11층이며 그 아래로 3∼4층이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개층 중 1·4·6·10의 4개층은 문화층이 아니고 나머지 7개층(2·3·5·7·8·9·11)만이 문화층이다.

부스러진 돌이 섞여 있는 5·7·10층은 기후의 변화가 심했던 시기에 쌓였고, 나머지 층은 흙 분석에서 찰흙층으로 그늘 안의 석회석가루와 언덕 위의 흙이 그늘 안으로 들어와서 생긴 층으로 나타났다.

짐승의 종은 젖먹이짐승 27종, 물뭍짐승 2종, 길짐승 1종, 새 2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옛말·말사슴·옛비단털쥐·들염소·북쪽오소리·아시아두꺼비들은 사라져 없어진 종으로, 이 그늘에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이 짐승들을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잡았던 사슴의 이로 보아 6∼8달 된 사슴 6몸체, 11∼12달 된 사슴 4몸체, 18달 된 사슴 1몸체들로서, 이들은 늦가을과 겨울에 이 그늘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늘의 넓이가 24㎡쯤 되므로 5∼6사람이 한 식구로 살았던 것 같다. 시기는 중기 구석기시대 말∼후기 구석기시대로 가늠되며, 우라늄-토륨연대측정법으로는 3만 년 전으로 나왔다.

상시 1그늘에서 나온 사람의 뼈화석으로는 양쪽 윗머리뼈, 왼쪽 앞팔뼈, 오른쪽 뒤팔뼈, 오른쪽 주걱뼈들이 있다. 이들은 진화된 곧선사람(Homo erectus)의 특징과 슬기사람(Homo sapiens)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점이 드러났다.

양쪽 윗머리뼈는 그 휘임새에 있어서는 진화된 로데시아 곧선사람의 머리뼈와 비슷하며, 중국다리·스완스콤·제벨이루후 Ⅱ 머리뼈와 닮은 점도 있어 슬기슬기사람(Homo sapiens sapiens)보다 앞서는 것으로, 진화과정에서 주목되는 점을 지니고 있다.

뒷머리뼈의 이음새활과 활줄이 105와 90으로 그 지수가 85.7이다. 다리사람이 115·100·86.9로 가깝고, 스완스콤사람의 105·92·87.6과도 매우 비슷하다. 이와 달리, 슬기슬기사람의 98·88·90.0과는 멀게 나타난다.

머리뼈 두께도 7㎜이고 핏줄홈도 굵고 깊다. 뼈 이음새자리로 보아, 나이는 25살쯤 된 것으로 가늠된다. 머리 크기가 작은 점과 낮은 점은 진화된 곧선사람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연구과제가 된다.

왼쪽 앞팔뼈는 슬기사람의 특징을 지니며, 짧고 굵은 편으로 길이 22.7㎝이고 휘임새도 슬기사람보다 크고 위둘레(anular sufrace)의 휘임새가 크다. 그 밑의 불룩이의 크기가 30.7㎜×14.6㎜로 힘살덧자리는 크고 거칠어 슬기슬기사람보다 오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앞팔뼈 마루(interosseous crest)에도 거친 덧자리가 있고 앞팔 뼈끝솟기까지의 너비는 33.2㎜로 더 투박하다.

오른쪽 뒤팔뼈의 반달도르래는 짧고 굵다. 뒤팔뼈 몸체의 가장 가는 곳의 둘레는 42.0㎜로 둘레지수(caliber index)는 19.39로 훨씬 크다. 반달도르래 밑의 힘살자리는 매우 거칠고 신경구멍도 길고 그 아래 둘레도 크다.

오른쪽 주걱뼈는 줄기갓도리(margo axillaris)의 힘살홈이 슬기슬기사람의 것과는 달리, 등쪽에 나 있어 네안데르탈사람의 것을 닮았다. 주걱뼈굼(cavitas glenoidales) 밑 3㎝ 아래 둘레모습으로 보아 슬기사람의 것으로 가늠된다. 앞팔뼈와 뒤팔뼈의 길이로 보아 키는 161∼162㎝로 추측된다.

전자 현미경으로 본 결과, 뼈를 깨고 뼈연장을 만들어 쓴 것이 뚜렷해졌다. 뼈밀개 가운데 한쪽에서 햇살방향으로 떼어낸 수법도 썼으며, 창끝으로 쓰기 위해 허리 양쪽을 홈을 파 듯 떼어낸 찌르개도 있다.

뼈를 깨고 깎으며 다듬는 데는 석기도 써 자갈돌을 떼어서 만든 큰 찍개 3점이 나왔다. 말사슴 갈비뼈에 가위표 (×)를 새기고 한쪽 끝에 구멍을 뚫어 치레걸이로 매달았던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가늠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앞으로 더 발굴할 필요가 있는 유적이다.

  1. 2그늘

2그늘은 1그늘에서 상시내 쪽으로 50m쯤 내려와서 높이 솟은 낭떠러지 바위 벽 밑쪽에 3.5m×3m쯤 팬 그늘에 있다. 이곳에는 민토기조각과 무늬그릇조각이 얇게 깔려 있고 고동을 구어 먹은 화덕이 나왔다.

이 밖에 사람뼈·말뼈가 더불어 나왔고 마름질한 돌끌, 화살촉들이 나왔다. 말뼈는 한 몸체분이 고스란히 묻혀 나와서 이곳에 머물렀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묻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1. 3그늘

3그늘은 2그늘보다 남쪽으로 20m쯤 내려와서 더 낮은 상시내와 더 가까운, 지금의 둔치와 거의 같은 높이(해발 180m)에 자리해 있다. 4m 너비의 나들이를 가지고, 안으로 좁아지는 넓이 14㎡의 그늘이다. 쌓임층은 모두 6층으로 나누어지며 맨 아래 6층이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 2·3·4·5층이 신석기시대로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 문화는 하이에나의 아래턱뼈와 우수리사슴·노루·오소리·토끼뼈가 있을 뿐이다. 2·3·4·5층에서는 석기로서 찍개·긁개·찌르개·홈날·뚜르개·화살촉 등의 발달된 구석기 전통의 석기와 아울러 곰배괭이·갈판·갈돌·공이들의 농사연장과, 간석기를 만들 때 썼던 숫돌·화살촉들이 출토되었다.

뼈연모로서 뼈송곳·찔개살·밀개·뼈바늘·치레걸이도 나왔다. 화로로 썼던 토기는 덧띠를 4줄로 대어 손으로 들어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나르기 좋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덧띠화로 외에도 빗살무늬그릇과 점찍은 가락바퀴들을 만들어 썼고, 조가비로 연모를 만들어 쓴 것도 나왔다. 이들 연장으로 보아 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상시그늘의 문화는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후기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1그늘문화,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던 신석기문화인 3그늘문화,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민토기시대)까지 살았던 2그늘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 유적은 곧선사람의 전통을 지니는 슬기사람 화석이 나와 우리 겨레의 뿌리를 찾는 점에서 매우 귀하고 뜻 깊은 유적이다.

참고문헌

『상시1그늘 옛살림터』(손보기, 연세대학교 선사연구실, 1984)
『단양상시유적 발굴 중간보고』(손보기, 한국고대사의 재조명, 충북대학교문화재연구회, 1981)
「상시3바위그늘의 문화연구」(홍현선, 연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7)
『Contribution a L’etude des Restes Humains des Os Parietaux Decouverts a Sangsi, Coree de Sud』(Sohn Songy, 손보기박사정년기념고고인류학논총, 1987)
Homo sapiens sansiensis(Sohn Pokee, L’anthropologie 89-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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