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대사시집 ()

불교
문헌
1780년에, 조선 후기 승려 상월 새봉의 시 「차귀청대사」 · 「봉차죽와문처사운」 등 84수를 수록하여 간행한 시집.
이칭
이칭
상월대사집(霜月大師詩集), 상월집(霜月大師詩集)
문헌/고서
편찬 시기
1780
간행 시기
1780
저자
상월 새봉(霜月璽篈)
편자
징오(燈窹), 해월(海月)
편저자
없음
권책수
1권 1책
판본
목판본
표제
상월집(霜月集)
소장처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내용 요약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은 조선 후기 승려 상월 새봉의 시 「차귀청대사」 · 「봉차죽와문처사운」 등 84수를 수록하여 1780년(정조 4)에 간행한 시집이다. 본문에는 오언 절구 9수, 육언 절구 1수, 칠언 절구 13수, 오언 율시 6수, 칠언 율시 55수 등 총 8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내용은 불교 세계의 내면을 읊은 부분과 상월 새봉이 유학자와 교류하면서 읊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정의
1780년에, 조선 후기 승려 상월 새봉의 시 「차귀청대사」 · 「봉차죽와문처사운」 등 84수를 수록하여 간행한 시집.
저자 및 편자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의 저자는 상월 새봉(霜月璽篈, 1687~1767)이다. 새봉의 주1은 손(孫) 씨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출신이다.

상월 새봉은 15세에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의 극준(極峻)에게 출가하였으며, 이듬해 세진 문신(洗塵文信)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18세에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의 아래에서 공부하여 그의 법을 이어 받았다. 1748년(영조 24) 새봉은 선교도총섭규정팔로치류사(禪敎都摠攝糾正八路緇流事), 2년 후에는 주표충원장겸국일도대선사(主表忠院長兼國一都大禪師)로 임명되었다. 1754년(영조 30) 봄에 새봉이 순천 선암사에서 화엄대법회를 주관할 때 1,2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들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새봉은 1767년(영조 43) 순천 선암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주2들이 순천 선암사, 해남 대둔사, 영변 보현사와 오도산에 그의 주3을 세웠다.

상월 새봉의 문하인 징오(燈窹), 해월(海月) 등이 그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서지사항

『상월대사시집』은 1권 1책의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雙邊)에 반곽(半郭)은 17×14.9cm이며, 10행 16자로 이루어져 있다. 2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를 사용하였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상월대사시집』은 1780년(정조 4)에 상월 새봉의 제자인 징오(燈窹), 해월(海月) 등이 1권으로 간행하였다. 주4에 따르면 이 책은 원래 2권으로 계획하였으나 원고를 분실하여 시집 1권으로 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이 시집이 수록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

권두(卷頭)주6에는 신경준(申景濬, 1712~1781)과 원중거(元重擧, 1719~1790)가 쓴 서문이 실려 있고, 주5에는 새봉의 제자 징오(燈窹)가 주7한 「상월선사행적」과 발문이 실려 있다.

본문에는 오언 주8 9수, 육언 절구 1수, 칠언 주9 13수, 오언 주10 6수, 칠언 주11 55수 등 총 8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크게 불교의 내적 감흥을 읊은 것과 새봉이 유학자와 교류하면서 읊은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불교의 내적 감흥을 읊은 시는 다시 불교 내면의 세계와 승려 간의 교류를 읊은 시로 나눌 수 있다. 불교 내면의 세계를 읊은 시로는 「회포를 풀어 읊다[述懷]」, 「벽송암을 제목으로 짓다[題碧松庵]」 등이 있다. 새봉은 이러한 시에서 “참선은 남악의 달이요 교설은 설암의 가풍이다”라고 하여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읊었다. 또한 “어찌 일세 호걸의 큰 공명을 부러워하랴”라며 주12의 자유와 주13한 삶에서 자족자락하는 주14의 흥취를 읊었다. 승려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시로는 「용담과 이별하며 지어주다[贈別龍潭]」, 「삼가 무용 대화상을 애도하다[謹挽無用大和尙]」 등이 있다. 이러한 시에서는 “마음은 천 강에 나타난 보름달이요, 자취는 만 리를 달리는 천리마 같다”라고 하여 운수납자 수행자의 삶을 읊고, “나고 죽음이 뜬 구름임을 알고 있다만 바람 맞으며 슬픈 눈물만 빈 뜰에 뿌리네”라고 읊고 있다.

새봉의 불교 외적인 교류를 읊은 시로는 「승평 부사께 드리다[呈昇平衙門]」, 「회포를 펴서 생질 김세귀에게 보이다[述懷示甥姪金世龜]」, 「복천사 유산객의 시운을 따라 짓다[次福泉遊山客韻]」 등이 있다. 이러한 시에서는 “고요한 숲 아래 이 절에서 참마음을 이야기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라고 읊어 지방 관리와의 문학적 교류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녹야원과 니구산의 길은 다르지만 천연(天然)의 대도(大道)는 문과 뜰을 함께 하네”라고 하여 석가모니가 태어난 녹야원과 공자가 태어난 니구산은 다르지만 그 가르침은 같다고 하였다. 때로는 산에 유람을 온 유학자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대개 유교에서는 선가를 폄하하더니 … 문득 시인을 만나 마음이 즐겁네”라고 하며 유학자들에게 은근히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상월 새봉의 시에는 승려의 삶과 유학자의 불교 인식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록된 시의 형식은 율시가 다수를 이루는데 이는 당시 승려들의 문학적 기량을 보여준다. 『상월대사시집』을 통해 18세기 수행자이자 지식인 상월 새봉이 가졌던 시대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단행본

김종진 옮김, 『송계대선사문집 상월대사시집』(동국대학교 출판부, 2017)
한국불교전서편찬위원회, 『한국불교전서』 9(동국대학교 출판부, 2017)
배규범,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임란기를 중심으로-』(보고사, 2001)

논문

이진오, 「조선조 불가문학의 역사성」(『한국문학논총』 14, 1993)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승려가 되기 전의 성. 우리말샘

주2

이름난 학자 밑에서 배우는 제자. 우리말샘

주3

고승(高僧)의 사리를 안치한 탑. 우리말샘

주4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5

책의 맨 끝. 우리말샘

주6

책의 첫머리. 우리말샘

주7

책이나 글을 지음. 우리말샘

주8

한 구가 다섯 글자로 된 절구.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다. 우리말샘

주9

한시(漢詩)에서, 한 구가 칠언으로 된 절구. 모두 4구로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주10

한 구가 다섯 글자로 된 율시. 우리말샘

주11

한시(漢詩)에서, 한 구가 칠언으로 된 율시. 모두 8구로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주12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하여 돌아다니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3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 우리말샘

주14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유위(有爲) 해탈, 무위(無爲) 해탈, 성정(性淨) 해탈, 장진(障盡) 해탈 따위로 나누어진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