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위백순의 5대손 위계석(魏啓奭)·위계송(魏啓宋)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위계석·위계룡(魏啓龍) 등의 발문이 있다.
4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부(賦) 1편, 시 48수, 권2에 소(疏) 1편, 책(策) 2편, 장(狀) 1편, 서(書) 1편, 잡저 4편, 서(序) 5편, 기(記) 3편, 발(跋) 1편, 찬(贊) 9편, 권3에 묘표명 1편, 묘지명 1편, 행장 3편, 전(傳) 2편, 제문 1편, 존재연보(存齋年譜) 1편, 권4에 부록으로 시 5수, 서(書) 3편, 설(說)·가장(家狀)·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농소(農疏)」는 농업 정책에 대한 의견을 올린 것으로, 토의(土宜)·전기(田器)·수리(水利) 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인정(仁政)을 베풀어 백성들이 화합을 이루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고 역설하였다. 책의 「칠정책(七政策)」은 전결(田結)·조전(漕轉)·조적(糶糴)·균세(均稅)·군정(軍政)·관방(關坊)·법령(法令) 등 칠정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대책을 논한 것으로, 특히 임금이 성정(誠正)으로 정사를 처리할 것을 강조하였다.
「청포이효자장(請褒李孝子狀)」은 이종진(李宗震)의 효행에 대한 표창을 건의한 글로, 그 사적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잡저의 「귀신위덕의(鬼神爲德疑)」·「자문문자충청미지인의(子文文子忠淸未知仁疑)」·「경례설략(經禮說略)」 등은 성리학과 경학 등에 관한 학문적 연구 내용을 집약한 글들이다.
기의 「최씨삼세충효기(崔氏三世忠孝記)」는 1627년 정묘호란 때 남이흥(南以興)과 함께 안주(安州)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최여지(崔汝篪)의 충절과 그 손자 최한진(崔漢軫) 및 증손 최탁(崔卓)의 효행을 기록한 글이다. 찬의 「기산팔현찬(岐山八賢贊)」은 김윤(金胤)·임분(林糞)·백광홍(白光弘)·백광성(白光城)·백광언(白光彦)·백광훈(白光勳)·김공희(金公喜) 등 8현의 행적을 찬양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