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아(士雅). 지중추부사 성엄(成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참판 성순조(成順祖)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성준(成俊)이며, 어머니는 참의 이계기(李啓基)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빙고별좌(氷庫別坐)에 제수되었고 이어 사헌부감찰·호조좌랑·우사어(右司禦)·의금부도사·사도시주부·익위사익찬 등을 역임하였다. 1503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공조정랑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아버지 성준이 윤씨의 폐위에 찬성하는 상소로 연산군의 뜻에 거슬려 갑자사화 때 직산에 유배되어 교살되자, 형 성중온(成仲溫)과 함께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가 해도(海島)로 이배(移配)되었다.
연산군이 아버지를 용서해주지 않고 그에게 대죄를 씌우려 하자 “아들된 자가 어찌 남의 손에 의하여 사약을 받으리요.”하고 자살하였다. 홍문관부제학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