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명나라와의 정례사행으로는 동지(冬至)·정조(正朝)·성절(聖節)·천추(千秋) 등이 있었는데, 1637년(인조 15)에 청나라 태종(太宗)의 조유(詔諭)로 천추사는 없어지고 새로 세폐사가 생기게 되었다.
그 뒤 1645년에는 서로의 편의를 보아서 이 네 사행을 일행(一行)으로 하여 날짜에 구애됨이 없이 보내기로 하여, 이 정례사행을 ‘삼절 겸 연공사(三節兼年貢使)’라 부르고, 혹은 약해서 동지사 또는 절사(節使)라 하였다.
이 사행은 매년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떠나서 그 해 12월 말 안으로 연경(燕京)에 도착, 40일 내지 60일을 머무른 다음 2월 중에 떠나서 3월 말이나 4월 초에 귀국하였다. 원액(員額)으로는 정사(正使) 1인, 부사(副使) 1인, 서장관(書狀官) 1인, 대통관(大通官) 3인, 호공관(護貢官) 24인 등 모두 30인이 공식적인 인원이었고, 이 밖에 종인(從人)은 절대적인 제한을 받지 않았다.
예단(禮單)으로는 장지(壯紙 : 두껍고 단단한 질이 좋은 한지)·소갑초(小匣草)·봉초(封草)·청서피(靑鼠皮 : 날다람쥐나 하늘다람쥐의 가죽)와 각양의 담뱃대·부시·창칼·부채·환도(環刀)·다리·붓·먹·대구(大口)·문어·전복·해삼 등이었다. 가지고 간 문서는 목적에 따라 각각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