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선전관, 전라도병마우후, 홍원현감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사윤(士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0년(선조 23)
사망 연도
1637년(인조 15)
본관
여산(礪山: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주요 관직
선전관|전라도병마우후|홍원현감
관련 사건
인조반정|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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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선전관, 전라도병마우후, 홍원현감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사윤(士允). 아버지는 창의별장(倡義別將) 송대립(宋大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아버지가 창의별장으로서 많은 의병을 모아 흥양(興陽)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전사하자 이를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하였다.

한때, 균전사 권진(權縉)이 호남의 민전(民田)을 감사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송심의 용맹성을 보고 대성할 것을 예견하였다. 또한, 도사(都事) 김시강(金時講)이 유생들에게 강(講)을 하과(下課: 왕이 講의 과제를 냄)할 때 송심은 자청하여 병서(兵書)를 훌륭하게 강하였다.

1614년(광해군 6) 무과에 급제, 북변(北邊)의 수비에 종사하고 돌아온 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수군통제사 구굉(具宏)의 막료가 되어 그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고, 이어서 전라도병마우후(全羅道兵馬虞候)가 되었다.

1635년에는 홍원현감(洪原縣監)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북병사 이항(李沆), 남병사 서우신(徐佑申) 휘하의 척후장(斥候將)으로 남한산성 구원에 나섰다.

그러나 양근(楊根)에 이르렀을 때 이미 강화가 성립되자, 중영(中營)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며 본국으로 철수하는 청군 소속의 몽고병을 추격, 안변남산역(安邊南山驛)에 이르러 전후영장(前後營將)과 함께 적을 공격, 부족한 병력으로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전라남도 흥양의 세충사(世忠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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