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소년 시절을 충청남도 천안에서 보내면서 천안중학교와 천안농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질을 보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진학, 김종영(金鍾瑛) 밑에서 조각 예술로 입문하였다. 그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 현대 조각 미술의 토양이 되었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통하여 1950년대의 그의 초기 작품은 그 당시 다른 조각가들과 마찬가지로 석고나 대리석, 나무를 소재로 하여 인체를 다룬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김종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이 시대의 작품은 자신이 선택한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형태를 탐색하였다. 즉, 대상의 가장 독특한 부위만을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더 강렬하고 극명한 효과를 얻고 있다.
그는 1956년에 철판들을 용접하여 만든 독특한 추상 작품을 시도한 「향(響)」이라는 작품을 국전에 출품하였다. 쇳조각을 입체 구성하여 용접하거나 철판을 두드려 만든 형태를 용접하는 이러한 작업은 우리나라 조각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였다. 그 뒤 송영수의 독특한 조형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작품 역시 완전 추상보다는 특정한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반추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체나 새의 형상이 그대로 추상 작품 속에 하나의 모티프로 재등장하고 있음도 그의 성향이 추상보다는 구상에 연유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테라코타 작업을 통한 또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역시 새와 인체가 중심 모티프로, 거칠게 다룬 흙의 표면 재질감, 새의 부리, 날개 등을 과장하여 특유의 표현성에 도달하고 있다.
1963년 이후 국전 조각 부문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마닐라국제전(1962년) · 사이공국제전(1962년) · 상파울로국제전(1967년) 등의 국제전에 출품하였다. 그밖에 육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의 기념 조형물, 경부고속도로준공기념탑 등의 기념 조형물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