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봉녕사 불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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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불화 / 신중탱화
봉녕사 불화 / 신중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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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봉녕사 약사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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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봉녕사 약사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내용

1881년 작. 2폭(신중탱화 1폭과 현왕탱화 1폭). 199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중탱화(神衆幀畫)는 위태천(韋太天)을 중심으로 제석과 범천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식이다.

상단에는 제석과 범천이 연꽃가지를 든 좌우가 바뀐 쌍둥이와 같은 모습으로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그 좌우로 공양물을 든 2천녀와 부채를 든 4동자들이 귀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와 달이 각각 표시된 원유관(遠遊冠)에 홀을 든 일궁천자와 월궁천자, 좌우 상단 끝편에 해와 달이 함께 표시된 원유관을 쓴 또 다른 천자가 배치되어 있다. 한 단에는 날개가 달인 투구를 쓴 위태천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그 좌우로 무기를 들거나 합장을 하고 갑옷을 입은 6인의 신장들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은 제석 · 범천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V자형 구도를 이루며 그 좌우를 여러 신장들이 에워싸고 있다.

제석과 범천의 얼굴 표정은 이목구비가 작고 얌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신장들의 표정은 웃음을 머금은 해학적이다. 채색은 군청색의 남용을 볼 수 있으며, 적색과 녹색은 두텁고 명도가 낮아 어두워 보인다. 군데군데 금색의 사용으로 어둔 화면을 보다 화려하게 해 준다.

현왕탱화(現王幀畫)는 사람이 죽은 후 3일만에 재판을 하는 현왕을 중심으로 판관 및 지옥사자, 동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구도는 현왕을 중심으로 좌우로 권속들이 에워싸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배경에 병풍이 보이나 여기에는 보이지 않고, 의자도 보이지 않고 책상만 보이고 있다.

하단 책상 앞으로 두루마리를 펼치고 등을 지고 선 관리를 중심으로 좌우에 2구씩의 관리가 두루마리에 붓을 든 채 시립하고 있다. 상단 현왕의 좌우로는 각기 지물을 든 동자와 지옥사자가 있고, 홀을 든 판관이 시립하고 있다.

비교적 간단한 구성으로 현왕은 크게 묘사하고 기타 권속들은 작게 묘사하여 현왕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원유관 위에 얻은 서책으로 보아 염라대왕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시왕 · 사자도를 봉안하여 사후 세계를 심판한다. 대웅전과 같은 주 법당에는 지옥 장면을 표현되지 않은 현왕도가 봉안된다.

말하자면 지장보살과 시왕 대신에 사후 세계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이 단독으로 봉안되어 그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봉녕사에서는 약사전이 주불전이므로 이곳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의 특징인 복잡하고 국산의 원색적인 군청색의 남용을 보여 주는 신중화는 화기에 의하면, ‘1881년(光緖 17, 辛卯年) 2월일 수원부(水原府) 광교산 봉녕사에 신중탱 일점을 봉안한다’고 하며, 금어 비구 현조(現照) · 수조(須照)가 그린 것이다.

참고문헌

『기내사원지』(경기도청, 1987)
『사찰소장괘불조사』Ⅰ(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전통사찰총서 3 -경기도의 전통사찰 Ⅰ-』(사찰문화연구원, 1993)
『서울전통사찰불화』(서울특별시, 1996)
「신중탱화의 도설내용과 성격」(홍윤식, 『문화재』 12, 1979)
「조선조 후반기 불화양식의 고찰」(문명대, 『불교예술』12, 1994)
「조선후기 신중탱화의 연구」(정병국, 『문화사학』1, 199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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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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