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鎭州: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사람으로, 아버지는 대광(大匡) 명필(名必)이다. 성씨(姓氏)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초에 진주 출신으로 정계에서 활약한 인물은 모두 임씨(林氏)이므로 명필의 성도 임씨일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조가 즉위하고 6일 만에 행한 인사이동에서 순군부영(循軍部令)에 임명된 인물이 임명필(林明弼)이며, 고려 초에는 같은 이름을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이가 곧 태조의 장인과 동일인일 것이다.
순군부는 고려 건국 후에 새로 제정된 군사지휘권의 통수부로, 태조는 군사권을 가진 인물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인 것이다. 왕비는 원녕태자(元寧太子)를 낳았는데 일명 진주낭군(鎭州郞君)이라고도 불렸다. 광종(光宗)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많은 호족(豪族)을 숙청하였는데 그 때 원녕태자의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광종이 승하하고 경종(景宗)이 즉위하자 복수의 기운이 일어나 광종대의 후생(後生)이 대거 제거되었는데, 그 와중에서 원녕태자가 살해된 사실에서 이는 실증된다. 광종의 외가인 충주(忠州)와 진주낭군의 외가인 진주는 서로 가까우므로 왕자들간에도 친밀한 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