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랑(僧朗)의 생몰년(生歿年) 및 생애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승랑은 장수왕(394~491) 후기에 랴오둥[遼東]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국으로 가기 전 고구려에서 이미 구족계를 받았으며, 고구려를 떠나기 전에 불교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랑은 비록 고구려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고구려 초기 불교와 후기 불교를 이해할 때 주목해야 하는 승려이다. 30세 때 중국으로 건너간 승랑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제자에게 중관학(中觀學)을 배웠다. 이 무렵 북쪽에서는 『아비달마론』이 성행하고 있었고, 남쪽(江南)은 『성실론(成實論)』에만 치우치고 있었다. 승랑은 성실학파를 비판하였다. 그는 둔황[燉煌]까지 가서 담경(曇慶)으로부터 삼론(三論)을 배웠고, 『화엄경(華嚴經)』에도 조예가 깊었다.
송나라 때에는 남쪽으로 옮겨 절강성(浙江省) 회계산(會稽山)에 있는 강산사(岡山寺)에 머물렀고, 절강성 종산(鍾山)에 있는 초당사(草堂寺)로 옮겨 주옹(周顒)에게 삼론을 가르쳤다. 주옹은 도교와 불교에 밝았고 만년에 『삼종론(三宗論)』을 지은 인물이다.
승랑은 512년(문자왕 21) 남경(南京)에 있는 섭산(攝山)의 서하사(棲霞寺)에서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선발해 파견한 지적(智寂) · 승회(僧懷) · 혜령(慧令) · 승전(僧詮) 등 열 명의 고승에게 삼론학을 가르쳤다. 또한 법도(法度)의 뒤를 이어 서하사의 주지를 맡았다.
제자 중 승전이 승랑의 학설을 계승하였고, 승전의 학통을 이은 사람은 흥황사(興皇寺)의 법랑(法朗)이다. 법랑의 후계자는 가상대사 길장(吉藏)이다. 승랑의 저술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장의 저술이나 중국과 일본 등에 현존하는 삼론 관계 문헌들에는 승랑의 논설이 인용되고 있다. 길장은 수나라 말기에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던 불교 학자로 승랑의 사상과 학설을 계승하여 ‘삼론종학(三論宗學)’을 크게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