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이다. 성은 신씨(申氏). 자는 영형(永逈). 아버지는 통한(通漢)이며, 경상북도 상주 출신. 세살 때 고아가 되어 숙부인 시어사(侍御史) 광한(光漢) 밑에서 자라났다.
13세 때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선사 동순(洞純)을 은사로 득도(得度)하였고, 이듬해 김제 금산사(金山寺) 계단(戒壇)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197년(명종 27) 스승 동순이 동순이 입적해서 그 장례를 치르느라고 승과 과정을 제대로 치루지 못하였다. 명종이 '범례에 구속하지 말라'고 명령하여 하자가 있음에도 승과를 계속 볼 수 있었고 합격하였다.
그 뒤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지눌(知訥)에게서 법요(法要)를 받고 강릉 오대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예배한 뒤 크게 감응을 얻었다.
또, 청평산에서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 ‘『수능엄경(首楞嚴經)』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이라는 『문수원기(文殊院記)』를 읽고 마음 깊이 감명을 받아 『능엄경』을 열람하였다.
이로써 모든 상(相)이 망상임을 통연히 깨닫고 자기 마음의 광대함을 알아 불법을 선양할 때에는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겠다고 발원하였다. 『능엄경』이 한국 선종에서 숭상되게 된 연유는 이자현이 문을 열고 승형이 다시 천명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1210년(희종 6)에 연법사(演法寺) 법회의 법주(法主)가 되어 선풍(禪風)을 떨치고, 1213년(강종 2)에 삼중대사(三重大師), 1214년(고종 1)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영일군 보경사(寶鏡寺)에 머물렀다.
1220년에는 희종의 넷째아들인 경지(鏡智)의 은사가 되었고, 1221년에 『능엄경』을 설한 뒤 팔공산 염불사(念佛寺)로 옮겨 입적하였다. 국사(國師)로 추증되었으며 비는 보경사에 있다. 시호는 원진(圓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