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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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즐문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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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즐문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내용

197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는 섬의 북쪽과 남쪽 해안에서 3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해 김해시대 패총과 즐문토기인의 석총(石塚)이 조사되었다.

1·2·3지구 패총은 표토층, 약 50㎝ 두께의 패각층(貝殼層), 10∼20㎝ 정도의 흑색부식토층(黑色腐蝕土層)으로 이루어진 단일 문화층 유적이었다. 주거지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1지구와 2지구에서 3개의 노지가 발견되었다.

1지구에서 발견된 2개의 노지는 80㎝×60㎝의 타원형이며 2지구의 부식토층 바닥에서 나온 노지는 지름이 약 60㎝로 둥글다. 패총출토유물은 대부분이 즐문토기편이고 석기는 극히 적고 골각기는 전혀 없었다.

출토된 즐문토기의 태토는 사질토에 활석이나 석면을 섞은 것도 약간 있으나, 굵은 석립이 섞인 점토질의 것이 많으며, 비교적 고온으로 구워 아주 단단한 것이 많다. 기형은 직립구연에 U자형의 둥근바닥[圓底]이 기본으로 테쌓기[輪積法]와 손빚기[手捏法]을 사용해 제작되었다.

문양은 크게 3군(群)으로 구분된다. 1군은 구연부에 단사선문(短斜線文)·점선열문(點線列文)·손톱문 등이, 기복부에는 횡주(橫走) 혹은 종주어골문(縱走魚骨文)이 새겨졌다. 2군은 구연부부터 기복부 중간까지 횡주어골문이 나있고 그 아래는 무문이다.

3군은 횡주어골문이 변형 또는 분해된 것같은 문양이나, 중호문(重弧文)·파상점선문(波狀點線文)·작은손톱문·그물문 등이 보이며, 즐문토기계 무문토기로 보이는 무문편도 있다.

즐문토기 외의 토기로서는 3지구 근처에서 수집한 완형무문토기와 3지구 교란층에서 나온 빗질이 잘된 공렬문토기편(孔裂文土器片)들이 있다.

김해기 패총에서는 삿무늬[繩蓆文]과 그물무늬[網狀文]가 두드림된 김해식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1지구 출토의 망추석(網錘石)·석부·석인(石刃)·마제석촉·연석(硯石)과 3지구 출토의 석촉 및 석착(石鑿)이 있다.

석총유구(石塚遺構)는 시도 최북단의 구릉 위 평탄한 대지에 위치한다. 지름 10∼15㎝의 할석을 쌓아 석총을 만들고 둘레에는 지름 25㎝ 정도의 큰 돌을 둘러쌓았다. 적석 높이는 상토층에서 약 30㎝ 정도이고 적석 중앙부가 약간 함몰되어 있었다. 크기는 동서 장축이 165㎝, 단축이 145㎝로 정연한 타원형이다.

적석 아래에는 깊이 30㎝에 장축 150㎝, 단축 120㎝의 타원형 토광이 있었으며 숯이 많았다. 적석 사이에서는 즐문토기편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대체로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최말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총에서 나온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3040±59B.P.라는 절대연대가 나와 서기전 10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시도패총(矢島貝塚)』(한병삼, 국립박물관,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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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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