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파는 1930년대 시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운동을 주도했던 문학 유파이다. 핵심 인물은 박용철과 김영랑이다. 여기에 정인보·변영로·이하윤·정지용의 참여로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시에 반발하여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한 점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은유나 심상을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문학파를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시 창작 이외에도 박용철의 시론이나 서구 시 번역에서 이하윤의 활동도 이들의 현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정인보(鄭寅普) · 변영로(卞榮魯) · 이하윤(異河潤) · 정지용(鄭芝溶)의 참여로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뒤에 김현구(金玄鳩) · 신석정(辛夕汀) · 허보(許保)가 새로 참가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문학파는 이들만을 지칭해야 할 것이나, 시문학파의 범위를 넓게 보는 입장에서는 이들과 경향을 같이하는 『문예월간(文藝月刊)』 · 『문학(文學)』 · 『시원(詩苑)』에 참여한 문인들까지도 포함시켜서 시문학파를 해외문학파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예월간』이나 『문학』은 범문단적인 종합 문예지였던 만큼 여기에 작품을 발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동인적(同人的)결속이나 이념적 유파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시문학』 동인들만으로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시(傾向詩)에 반발하여 문학에서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한 점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나 민요시 또는 카프의 경향시가 모두 자유시의 특성에 대한 명백한 자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시로서의 현대성을 논하기에 미흡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에 실린 김영랑 · 정지용 · 박용철 등의 작품에서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조화에 의한 자유시가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 언어의 조탁(彫琢)이라는 면에 그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시의 언어가 산문이나 일상적인 언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현대시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라면, 김영랑을 중심으로 한 시문학파가 이 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또 뒤에 오는 시인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구문(構文)이란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대체로 1920년대의 시는 의미 구조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영랑의 시에서는 의도적인 호음조(好音調) · 음성상징(音聲象徵) · 압운법(押韻法) · 음보율(音步律) 등 음성 구조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 사이의 조화와 긴장을 통한 창조적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는 김소월의 민요시보다도 한 걸음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현대성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색으로 시문학파의 시에서 은유와 심상이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1920년대)의 시에도 은유나 심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문학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1920년대의 은유나 심상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대부분인 데 비하여 시문학파의 은유나 심상은 시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의식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정지용 등의 시적 성과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시문학파를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진 입론(立論)이며, 시창작 이외에도 박용철의 시론이나 서구 시 번역 분야에서의 이하윤의 활동도 이들의 현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