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윤 ()

이하윤
이하윤
현대문학
인물
일제강점기 『물레방아』를 저술한 시인. 영문학자.
이칭
연포(蓮圃)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6년(고종 43)
사망 연도
1974년
출생지
강원도 이천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물레방아』를 저술한 시인. 영문학자.
개설

아명은 대벽(大闢), 후에 항렬을 따라 이하윤으로 개명하였다. 호는 연포(蓮圃). 강원도 이천(伊川) 출신. 아버지는 이종석(異宗錫)이며, 어머니는 이정순(李貞順)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이천공립보통학교, 1923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도쿄 호세이대학[法廷大學] 예과, 1929년 법문학부 문학과를 수료하였다.

전공은 영문학이나 대학 재학 중에 프랑스어 · 이탈리아어 · 독일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1929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1929∼1930) · 동구여자상업학교(1942∼1945)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1930∼1932) · 『동아일보』(1937∼1940)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의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중앙문화협회를 창설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혜화전문학교(1945), 동국대학교 · 성균관대학교(1947∼1950)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겸 교양학부장으로 있다가 작고하였다. 1956년 유네스코아시아회의(일본 도쿄)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10여 차례나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민주일보』 · 『서울신문』의 논설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공직을 역임하였다. 문학 활동은 1926년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 『해외문학』 동인 및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31년 ‘극예술(劇藝術)’ 동인, 1932년 ‘문학(文學)’ 동인으로도 활약하였다. 그의 시는 대체로 애조를 띤 민요조의 서정시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39년에 발간된 그의 첫 시집 『물레방아』는 시상이나 리듬의 단조로움으로 인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같은 서정시 계열의 시인인 김소월(金素月)이나 김영랑(金永郎)의 그늘에 묻혀버린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의 문학사적 공헌은 창작시보다는 외국시의 번역 소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역시집 『실향(失香)의 화원(花園)』(1933)은 이 방면에서 1930년대 문학 활동을 대표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불란서시선(佛蘭西詩選)』(首善社, 1954) 등 역시집과 『현대서정시선(現代抒情詩選)』(博文書館, 1939) · 『현대국문학정수(現代國文學精髓)』(中央文化協會, 1946) · 『현대한국시집(現代韓國詩集)』(漢城圖書, 1955) 등의 편저가 있다.

참고문헌

『연포이하윤선생화갑기념논문집』(김윤식 외, 진수당, 1966)
「나의 문단회고」(이하윤, 『신천지』, 1950.6.)
「시문학파의 기수: 이하윤의 시」(조병춘, 『한국현대시사』, 집문당, 1980)
「한국근대시번역의 문제점: 김소운과 이하윤의 경우」(김윤식, 『현대문학』, 1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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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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