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98m. 백제 시대에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서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식장산은 옥천에서 대전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이 산마루는 백제멸망과 관계 깊은 곳으로 탄현(炭峴) 또는 숯고개·숯재라 불리었다.
백제의 마지박 충신 성충(成忠)은 옥중에서 상서하기를 “앞으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니 만일 적병이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는 기벌포(伎伐浦)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황산벌과 백강에서 적병을 막았고 신라와 당나라 군사들은 탄현을 넘어 침공하여 결국 백제는 패망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식장산은 현 남쪽 23리에 있다."고 기록하였고 『산경표』에는 '식장산(食莊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식장산과 관련해 탄현(炭峴) · 숯고개 · 숯재와 동일한 것으로 또는 탄현이 식장산에 있는 고개로 서술되어 있는 문헌이 많다. 이는 『한국지명총람』의 내용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 인용된 결과이다. 현재 대전광역시 동구 삼정동에서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로 넘어가는 자모실고개(장고개)가 있다. 이 고개 서쪽 골짜기에는 신라 시대 사찰로 추정되는 고산사(高山寺)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도 "고산사는 식장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통신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동북쪽에는 1934년 축조돼 대청댐 건설 이전까지 대전의 중요한 상수원이었던 세천 저수지가 있다.
식장산의 험난한 지형은 자연의 요새지로 백제 때뿐만 아니라 6·25 때에는 연합군과 괴뢰군의 격전지가 되었고 현재도 국방상의 요지이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양국의 길목으로 험난하지만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현재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요지다. 이 구간은 경부선철도를 부설할 때 작업이 어려운 구간이었고 경부고속도로에서도 이 지역에 터널이 집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