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공보(功甫), 호는 화당(化堂). 신원(申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정미(申廷美)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신암(申黯)이며, 어머니는 김지(金墀)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사마시를 거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학유(學諭)·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감찰, 연서도찰방(延曙道察訪)·은계도찰방(銀溪道察訪) 등을 지내다가 한때 관직을 사퇴하였다.
1624년(인조 2) 예조정랑으로 선릉(宣陵: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단오제 전사관(典祀官)이었는데, 환관 나업(羅業)이 불경스런 행동을 취한 것을 구실로 환관들의 폐를 상소하여 이를 시정하게 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 강화도로 피난하였고 청나라와의 화의에 반대하였다.
그 뒤 장령(掌令)·사간 등을 거쳤으며, 1631년 보덕으로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려는 의논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여 강계로 유배되었다. 1633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화의가 성립된 뒤에는 영남에 내려가 있다가 1640년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우승지에 임명되었으며, 1650년 대사성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화당집(化堂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