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진경성(陳敬誠). 평안남도 안주 출신.
일찍이 중국으로 가서 1933년 광둥정치군사학교[廣東政治軍事學校]를 졸업하였다.
1936년 중앙육군군관학교 제4분교, 1937년 육군보병학교 간부훈련반을 거쳐 중앙포병 제51단에 소위로 임관, 배속된 뒤, 우창[武昌]·한커우[漢口]·웨양[岳陽] 등의 전투에 참가하였고 창사[長沙]·링난[嶺南] 대회전에서 무공을 세웠다.
1941년 임시정부의 지령으로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시안전방사령부(西安前方司令部) 참령참모(參領參謀)에 임명되어 푸양[阜陽]으로 파견되어 일본군점령지구에 대한 초모활동·선전공작·정보수집·유격전 등을 맡았다.
1944년에는 중국중앙군 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학원대 한청반(第四團特科總大學員隊韓靑班) 교관이 되어 새로 초모한 사병을 훈련시켜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1945년 6월 임시정부 주석비서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교포의 귀국에 노력하다가 1946년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전원위원(駐華代表團專員委員)이 되었고 1947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광복청년회 전위대장을 지냈고, 다시 대만으로 가서 국민당정부 국방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50년 2월 귀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