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언유(彦游). 참의 신포시(申包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 신장(申檣)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이며, 어머니는 사재부정(司宰副正) 윤경연(尹景淵)의 딸이다. 장인은 태종의 아들 후령군(厚寧君) 이간(李𥘏)이다.
1466년(세조 12)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으로 있으면서 알성시(謁聖試)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직제학에 초천(超遷)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호군에서 병조참지·병조참의를 거쳐 1469년 성종이 즉위한 직후에 동부승지가 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부승지가 되고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으며 이어 좌승지를 거쳐 1474년 도승지가 되었다.
1478년 이조참판으로 재직하던 중 대간으로부터 청간(淸簡)하지 못하다는 탄핵을 받고 공조참판으로 옮겨졌다. 그간에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혐의로 쟁송(爭訟)에 자주 거론되어 인품이 청렴하지 못하다는 세평을 들었다.
1479년 고천군(高川君)에 봉하여졌고, 1481년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4월, 왕의 인신(印信: 왕의 도장)을 위조하여 남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혐의로 사사(賜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