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3월 창립되었고 김일성(金日成)의 현지교시에 의해 1960년 6월 25일 개관하였다. 6·25 당시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자료나 증거물들을 통하여 근로자들을 반제·반미사상으로 교양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시기별로 4개 부분으로 구분해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첫 부분에는 1866년부터 8·15 광복 때까지, 둘째 부분에는 광복 후부터 6·25 전까지의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셋째 부분에는 6·25 당시 북한군의 투쟁 모습과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1950년 10월 17일부터 약 50여일간 미군이 신천지역을 점령하고 있으면서 35,000여 명의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자료들을 비치하고 있다. 넷째 부분에서는 6·25가 끝나고 김일성의 영도 아래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주변에는 미군이 9백여 명의 주민을 불태워 죽였다는 전 신천군당 방공호, 희생자 5,605명을 합장했다는 묘, 신천군 원암리 밤나무골에 있는 두 개의 창고, 400명의 어머니 묘, 102명의 어린이 묘 등을 미군의 학살자료로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학살은 북한 내무서원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북한은 1998년 3월 25일 현지에서 신천박물관 창립 40주년 기념보고회를 열고 신천박물관 일꾼들에게 보내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감사문을 통해 “신천박물관은 지난 조국해방 전쟁시기 미제 침략자들이 감행한 천인공로할 만행을 고발하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반제반미사상으로 교양하는 힘있는 거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은 6·25 때마다 이곳에서 청년학생 궐기집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