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42m. 신라 말 선종 산문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크게 일으킨 수철(秀澈, 815∼893)의 유골을 모신 승탑이다. 실상사 서쪽에 위치한 극락전의 오른쪽에 있으며,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위치로 보인다. 극락전 왼쪽에는 수철의 스승으로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洪陟)의 승탑이 서 있다.
승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의 모습이다. 단면 8각의 바닥돌은 제법 높은 편이며, 윗면에는 아무런 시설도 없이 바로 받침돌이 놓여 있다. 8각의 아래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아래부분에는 제법 높직한 굄을 둘렀고, 그 위의 옆면은 구름 무늬로 장식되었는데, 각 면마다 구름 속의 용이나 사자의 모습이 돋을새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받침돌 위에는 하나의 돌로 조성된 8각의 가운데받침돌 굄돌이 놓여 있는데, 제법 높직하면서 위아래단으로 나뉘어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낮고 좁은 편으로, 각 면마다 신라 석조물에서 주로 보이는 안상(眼象)이 오목새김되어 있으며, 안상 안에는 사리함(舍利函)이나 주악상(奏樂像) 등의 여러 조각이 새겨져 있어 화사하게 보인다. 윗받침돌은 밑면에 8각의 각진 받침이 3단으로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하나의 꽃잎이 위로 솟아 있는 앙련(仰蓮)의 연꽃무늬 16개가 세겹으로 돋을새김되었는데, 꽃잎 안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모두 48개의 연꽃무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화려하게 보인다. 윗면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2단의 각진 굄만 있다.
받침돌 위에는 하나의 돌로 만든 8각의 몸돌 굄돌이 얹혀 있다. 굄돌의 높이는 낮은 편인데, 옆면에는 각 면마다 1구씩의 가늘고 긴 안상이 새겨져 있고, 옆면 윗부분의 덮개돌 모양 밑면에는 마치 석탑 받침돌의 덮개돌에 있는 부연(副椽)처럼 각진 받침이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윗면에는 낮고 각진 굄, 높고 둥근 굄, 낮고 각진 굄 등의 3단 굄이 몸돌을 받치고 있지만, 많이 파손되어 뚜렷하지는 않다.
몸돌은 8각의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門扉)를 조각하였는데, 문비의 좌우면에는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되었다. 문비와 사천왕상 등의 조각은 8각원당형 승탑의 기점인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1962년 지정)부터 나타난다.
지붕돌은 전체적으로 평박(平薄)해 보인다. 밑면에는 몸돌 바로 윗부분에 1단의 각진 받침이 있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처마 주변에는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었으며, 그 바깥쪽에는 각진 서까래가 새겨져 있다. 윗면인 낙수면에는 8각의 합각(合角)마다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굵게 표현되었고, 우동과 우동 사이에는 기왓골이 뚜렷하며, 처마의 끝부분에는 수막새와 암막새 기와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추녀는 거의 수평에 가까운데, 완만한 곡선을 이룬 전각에는 귀꽃이 없다. 다만, 우동 끝부분에는 잡상(雜像)을 놓았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를 받치도록 8각의 각진 굄을 2단으로 조성해놓았지만, 상륜부의 부재는 현재 노반(露盤)만 남아 있을 뿐이다. 노반의 겉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윗부분은 덮개돌 모양으로 생겼지만 부연만 조각되어 있다.
이 승탑의 북쪽에는 수철화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탑비가 있다. 비명의 내용으로 보아, 이 승탑은 893년(진성왕 7)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