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성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2~417년이며,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위에 추대했다.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사와 국정을 위임했다. 외교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에 내물왕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화의를 도모했고, 왜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응징했다. 내물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빌려 눌지를 제거하려 했으나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실성왕을 살해했다. 이 정변으로 실성왕의 모계 석씨세력은 소멸되었다.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추대해 왕위를 계승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실성이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내물왕을 원망했고 그가 401년(내물왕 46)에 고구려로부터 귀국한 다음해에 내물왕이 죽자 왕자들을 제쳐놓고 즉위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왕위계승에는 고구려의 군사적 후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403년(실성이사금 2)에 효과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미사품(未斯品)을 서불한(舒弗邯 : 伊伐飡)으로 삼고 군국(軍國)의 일들을 위임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왜와의 화호(和好)를 위해서 402년(실성이사금 1)에 내물왕의 왕자인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보내고, 412년에는 고구려와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 내물왕의 왕자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실성왕의 인질외교(人質外交)는 왜와 고구려 양국과의 관계개선 내지 관계유지라는 대외적인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물왕의 왕자들을 외국에 볼모로 보냄으로써 내물왕계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실성왕계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왜와는 관계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405년에는 왕이 친히 기병을 이끌고 명활성(明活城)에 침입해 온 왜병을 맞아 싸워서 300여 명을 참획(斬獲)하는 군사적 응징도 가하였다. 이 밖에 413년에는 평양주(平壤州 : 지금의 경기도 楊州)에 큰 다리를 준공하기도 했다.
실성왕은 내물왕의 태자인 눌지(訥祗)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이용해 눌지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정변을 일으켜서 실성왕을 살해하였다. 이 정변으로 말미암아 실성왕의 모계인 석씨세력은 김씨계에 의해 소멸되었다. 실성왕에 뒤이어 내물왕계인 눌지왕이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