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용(子容).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원(沈湲)이고, 아버지는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화를 입은 심순문(沈順門)이며, 어머니는 이의구(李義坵)의 딸이다.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고, 금천현감(衿川縣監)을 지낸 심형(沈泂)에게 입양되었다. 좌의정 심통원(沈通源)의 형이며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심기원(沈器遠)의 4대조이다.
1517년(중종 1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부수찬(副修撰)에 올랐다. 1519년 부수찬이 되었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외방으로 귀양 갔다. 1522년 죄가 사면되어 성균관직강에 임명되었으나 대간들의 탄핵으로 곧 체직되었다. 그 뒤 1530년 오위의 호군이 되었으나, 뇌물수수 혐의로 탄핵되어 파직되었다.
그러나 한어(漢語), 이문(吏文: 중국과 외교문서에 쓰던 조선시대의 독특한 용어)에 통달하였으므로 해당 관청에서 강력히 추천하여 1533년 승문원판교(承文院判敎)에 임명되었다. 외교문서 작성에 많은 공로를 세웠고, 이문교육에 이바지하여 중종의 신임을 받았다. 벼슬은 통례원좌통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