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6월 일본이 대장성(大藏省) 관방장(官房長)을 역임한 나가모리[長森藤吉郞]를 내세워 대한제국정부에 전국토의 3분의 1에 달하는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당시 유생을 비롯한 전국민의 반대여론이 비등하였다.
특히, 그 반대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7월 13일 종로 백목전도가(白木廛都家)에 조신(朝臣)과 유생들이 회집하여 공개적으로 일본의 요구를 물리쳐야 한다고 연설하고, 관련대신을 성토하였다.
아울러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뜻하는 보안회(輔安會, 保安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이 때 전 의관(議官) 송수만(宋秀晩)과 함께 보안회를 주도하였다.
심상진은 당시 참정(參政) 심상훈(沈相薰)의 인척으로, 그와 가까운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보안회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하여 7월 17일에 송수만과 손인섭(孫寅燮)을 체포하였고, 정부에서는 군중의 효유해산(曉諭解散)을 지시하였다.
보안회에서는 치안문제를 고려하여 7월 18일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소를 옮겼으나, 7월 22일 무장한 일본군이 보안회에 돌입하여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고, 관련문서를 강탈하였다. 이 때 원세성(元世性) 등과 함께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