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의지(義之), 호는 대관재(大觀齋). 심구령(沈龜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치(沈寘)이고, 아버지는 풍산군(豊山君) 심응(沈膺)이다. 어머니는 서문한(徐文翰)의 딸이다. 좌의정 심정(沈貞)의 동생이다.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형과 달리 모사를 모르고 직언을 잘하였다. 1509년 윤대(輪對)에서 당시의 정세는 군약신강(君弱臣强)임을 진언하였다가 공신들에게 미움을 사서 여주부 교수(敎授)로 좌천되었다.
이 때 정치의 도리를 밝힌 「일의잠(一宜箴)」을 국왕에게 올려 신임을 받고 사헌부감찰에 발탁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좌랑이 되었으나 관물을 절취하였다고 하여 탄핵, 파직되었다. 행동이 광패하고 언동이 직선적이어서 사람들의 호감을 받지 못하였다. 다만, 서경덕(徐敬德)·성세창(成世昌) 등은 심의의 뜻을 이해하고 친히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