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중요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쓰였고 가야금은 신라에서 쓰였던 만큼 이런 현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악기가 다량으로 필요할 때에는 그때마다 궁중에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을 설치하여 악기장을 채용하여 썼다. 이러한 명맥을 이은 강상기(康相騎)라는 장인이 있었으나 후계가 끊겼다.
또, 각 지방에는 악기장이 공방을 차리고 악기를 만들었는데, 전주김명칠(金明七) · 강대택(姜大澤), 정읍김학기(金鶴基), 화순정학기(鄭學基)와 같은 장인이 있었다.
1971년 악기장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5년 중요무형문화재인 북메우기와 통합되었다. 1998년 현재 기능보유자로는 고흥곤(高興坤, 현악기제작) · 이영수(李永水, 현악기제작) · 윤덕진(尹德珍, 북제작)이 지정되어 있다.